대서양의 유래가 그리스어로 거인을 나타내는 '아틀라스(Atlas)'라는 것은 다른 대양들의 이름과 견주어 볼 때 대단히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하다. 오랫동안 지중해는 라틴어로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즉 우리들의 바다였고 대서양은 우리들의 바다가 아닌 신비롭고 알 수 없는 무지의 바다인 '마레 이그노툼(Mare Ignotum)'이었다. 한마디로 유럽인들에게 지중해 너머의 세계는 전통적으로 무섭고도 공포스런 곳이었다. 지중해라는 공간에 닫혀진 유럽이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뒤 포르투갈 스페인을 선두로 마침내 헤라클레스의 기둥을 넘어 그 미지의 바다로 나가는 길을 개척했을 때 세계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이미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중해 시대가 지중해라는 따뜻한 모태안에서 펼쳐진 안으로의 역사라면 대서양 시대는 그 모태 바깥으로 떠난 성숙되지 못하고 성난 그러나 야심찬 젊은이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너무도 커져서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거인,고야의 '자애로운 괴물'이라는 그림에서 보듯 무시무시한 괴물 모습의 유럽. 그 역사는 바로 팽창,헤게모니로 대변되는 서구 제국주의의 역사이고 세계가 정복민과 피정복민,지배자와 피지배자,중심부와 주변부,남과 북의 세계 등으로 철저하게 이분됐던 침탈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때 어마어마했던 이슬람적 기준이 사라진 자리에 대서양을 중심으로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서구는 세계의 표상이자 상징이고 보편성 그 자체이며 나머지 모든 세계를 재단할 수 있는 표준이 됐다. 지중해가 도시국가들을 포용하는 바다였다면 대서양은 근대의 여명과 더불어 국가들(Nations)의 관계,즉 오늘날의 국제질서를 규정하는 데 적합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서양문명사'(김명섭 지음,한길사,3만5천원)는 바로 이런 대서양이라는 바다를 매개체로 장구한 시간에 걸쳐 벌어진 유럽세계(뒤에 대서양 서편의 미국까지 포함해서)의 이야기다. 대서양 바다의 색깔이 시대에 따라 푸르고 하얗고 검은 색으로 인식됐듯 그것은 빛과 그림자의 이야기다. 그속에 인간 또는 그 인간이 속한 추상적 존재인 국가가 꿈꾸고 바라고 구축한 온갖 종류의 선과 악,욕망과 좌절이 한 데 어우러져 있다. 그것은 거대한 문명사에 다름아니다. 저자는 이 문명이 대서양이라는 공간을 기반으로 시간을 통해 어떻게 전개되고 형성됐는지를 학문적 엄밀성과 혜안 그리고 방대한 양의 자료를 동원해 밝히고 있다. 어찌보면 거대담론을 담고 있는 이 책이 쉽게 읽혀지는 것은 전적으로 저자의 글솜씨에 기인한다. 덧붙여 우리가 지니고 있었던 기존의 시각을 교정해 세계를 다시금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 눈의 창을 닦게 해준 것도 저자가 베푼 따뜻한 배려다. 인문학 저술이 저조한 최근의 풍토에서 이런 기념비적 책을 우리들이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두껍고 방대하지만 저자의 자상한 안내로 우리들은 풍랑 일고 어떤 때는 잔잔한 대서양이라는 상징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게 됐다. 그것을 통해 우리들은 근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구문명이 거쳐온 궤적을 호기심 재미 분노 감탄과 함께 더듬어 볼 수 있게 됐다. < 서성철 한국외대 역사문화연구소 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