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신이 다음달 10일 창립 20주년을 맞아 KT그룹으로 거듭난다. 한국통신은 지난 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로 출범해 전화 적체를 해소하고 한국을 통신강국으로 키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면서 비효율적 관행이 쌓이고 주력 유선통신사업이 한계에 달하면서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더구나 한국통신은 내년 6월말까지 완전히 민영화된다. 바로 이 과도기에 한국통신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기술자 출신 경영인 이상철 사장(53)이다. 지난해 12월 이상철 전 한국통신프리텔 사장이 한국통신 사장으로 선임된 후 통신업계에서는 말이 많았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국통신을 개혁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반대로 "한차례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라느니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다가 분쟁만 일으킬 사람" "한국통신 앞날이 걱정된다"느니 하는 부정적인 얘기도 나돌았다. 예상대로 이 사장은 취임 후 강력히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비주력사업을 과감히 떼어냈고 조직을 개편했다. 그러나 우려했던 '심한 마찰'은 발생하지 않았다. 114 전화번호안내 서비스를 분사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겼으나 무난히 넘어갔고 노조와의 단체협상은 무분규로 타결됐다. 이 사장은 취임 후 줄곧 "한국통신을 '뛰는 공룡'으로 바꿔놓겠다"고 말해왔다. 그동안 '공룡'이란 단어는 공기업 한국통신의 비효율을 꼬집을 때 사용되곤 했다. 그런데 이 사장은 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며 "자는 공룡을 깨워 뛰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자는 공룡을 뛰게 하려면 '채찍'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이 사장은 엉뚱한 카드를 내놓았다. 임직원들이 자부심을 갖게 하고 한국통신 미래를 낙관하게 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는 "유선통신사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의 희망은 라스트 원 마일(Last One Mile:전화국과 가입자를 잇는 가입자망)에 있다"며 희망을 불어넣는데 주력했다. 비전을 실천할 세부적인 실천방안도 마련토록 했다. 이 사장은 이와 관련, "사장으로 취임해서 보니 임직원들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수년간 계속된 구조조정으로 지칠대로 지쳐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노조에는 고용안정을 보장하고 '노사불이(勞使不二)'란 믿음을 줌으로써 노사관계를 안정시켰다. 이 사장은 유선통신사업에 관해 "한국통신은 그동안 망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챙기는데 만족했다"며 "앞으로는 라스트 원 마일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간에 나도는 '공룡론'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사장은 "한국통신에 대해 공룡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세계 통신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공룡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공룡이 되려고 하면 무작정 팔다리를 자르려고 드는데 이는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덩치가 커지면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라는 것. 이 사장은 업무의 효율은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임직원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데 힘썼다. 이와 동시에 '3선(先)경영'을 들고 나왔다. 3선이란 선견(先見) 선결(先決) 선행(先行), 즉 먼저 보고 먼저 결정해서 먼저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사장은 임직원들이 공기업 체질에서 벗어나 신속하게 움직일수 있도록 조직과 관행을 바꿔나갔다. 한솔엠닷컴 인수와 관련한 결정을 내릴 때는 오전회의에서 '주가가 더이상 떨어지면 매수청구권이 쇄도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자마자 당일 오후 2시에 이사회를 소집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 사장은 지난 5월 취임 후 처음으로 큰 성과를 올렸다. 해외에서 DR(주식예탁증서)를 할증발행하는데 성공한 것. 물론 DR를 시가보다 높게 발행할 수도 있고 낮게 발행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당시엔 할증발행은 상상하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세계적으로 증권시장이 침체되어 있었고 각국의 통신업체들이 경영난에 처해 제값을 받기가 쉽지 않은 터였다. 이 사장은 이에 대해 "한국통신이 브로드밴드(초고속인터넷) 세계 1위 사업자이고 이 분야에서 흑자를 내는 유일한 사업자라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이 사장과 함께 한달 가까이 해외 로드쇼를 다녔던 사람들은 한가지 이유를 더 든다. 이 사장이 유창한 영어로 한국통신의 비전을 거침없이 설명해 투자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상철 사장에 관해 얘기할 때 어김없이 거론되는 것이 있다. '프리텔 신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 사장은 한국통신프리텔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PCS 3사중 공기업인 프리텔이 꼴찌를 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프리텔을 1위에 올려놓았다. 또 반년만에 1백만 가입자를 모아 통신업계를 놀라게 했다. 탤런트 고소영이 나오는 TV광고 카피 "소리가 보여요"와 가수 이정현이 광고에서 한 "내꿈 꿔"란 말은 프리텔 신화의 상징어가 됐다. 그런데 '프리텔 신화'를 주도했던 이 사장은 경영보다는 연구개발에 주력했던 기술자 출신이다. 그는 미국 듀크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나서 NASA 컴퓨터사이언스와 한국국방과학연구소에서 17년간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런 까닭에 기술자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해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이 사장은 이에 대해 "경영은 회사에 돈을 가져다 주는 고객에서 비롯된다"면서 "고객 입장에서 보면 모든 문제가 보인다"고 말했다. 이 사장을 평가하기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한국통신 앞에는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동통신 자회사인 KTF와 KT아이컴의 합병이 숙제다.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 동기 사업자와 비동기 사업자를 원만하게 합병하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사장은 "여건이 성숙되는 대로 내년중 두 자회사를 합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영화 이후 한국통신의 진로를 명확하게 잡고 성공적으로 재출발시키는 것도 이 사장의 책무다. 그가 '프리텔 신화'에 이어 'KT 신화'를 일궈낼지 여부는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김광현 기자 khkim@hankyung.com ------------------------------------------------------------------ [ 약력 ] 1948년생 71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76년 미국 듀크대 공학박사 76~79년 미국 NASA 통신위성설계담당 선임연구원 79~82년 미국 컴퓨터사이언스 책임연구원 82~91년 한국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91~96년 한국통신 통신망연구소장 무선사업본부장 PCS사업추진위원장 96~2000년 한국통신프리텔 사장 2001년~현재 한국통신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