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한미은행 지분 확대, 현대자동차의 카드사업 진출, SK의 모바일금융 개시, 동양의 금융전업 모색... 재계 금융대전 서막이 오르고 있다. 은행 민영화에 대기업들이 앞다퉈 나설 것이라는 단순한 얘기가 아니다. 그동안 쌓아온 사업토대를 금융과 연계시켜 '소비자 토털 파이낸싱'을 전개하는 퓨전마케팅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 정유업과 무선전화서비스의 최강자 SK는 주유소와 O11서비스 네트워크를 거점으로 소비자금융에서 단숨에 선두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복안이다. '자동차(기름) 휴대전화 신용카드'가 만나면 '금융.유통.정보' 비즈니스가 한손에 잡힌다는 구상이다. 롯데는 백화점과 할인점 카드영업에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소매금융의 강자로 발돋움한다는 복안이다. 현대자동차는 차 할부금융에 머물지 않고 현대.기아차 고객을 상대로 '토털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삼성은 보험 증권 등에다 민영화은행을 합치면 차세대 국내 산업구도를 좌우할 금융대전에서 최종 승리를 일군다는 전략구도를 짜고 있다. 왜 하필 지금 금융업에 부쩍 관심이 높아졌을까.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비즈니스는 전세계적으로 흘러넘친다. 디자인이나 애프터서비스같은 '각개약진'식 분야별 혁신경쟁으로 시장을 창출하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기업들은 이대로는 장기불황에 고사당할지도 모른다 강박감을 느껴온지 오래다. 돌파구는 소비자 금융비즈니스로 정해졌다. 지난 20~30년씩 제조업이나 유통업을 하면서 쌓아온 영업망 고객정보망을 묶은 '네트워크'로 소비자금융이라는 새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선진국의 앞선 기업들이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퓨전금융시대 =대기업들이 모색중인 금융사업 전략은 기존 금융업과는 비즈니스 개념부터 다르다. 자동차영업소 주유소 휴대폰대리점들이 거점으로 부상한다. 기존 사업을 토대로 금융업이 전개되기 때문에 '퓨전금융'으로 불린다. 주유소 정비소 백화점 대중교통시설 등 '오프라인'의 움직이는 공간에서도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선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금융과도 구별된다. 1천5백만명의 오케이캐쉬백 가입자에 1천4백만명의 휴대폰 가입자를 갖고 있는 SK는 지난달 다이너스카드 입찰에 참가하지 않았다. SK는 대신 '모바일 커머스'(무선전자상거래)의 첫 비즈니스 모델인 모네타카드를 지난 20일 발표했다. SK텔레콤이 삼성카드 외환카드 LG캐피탈 하나은행 한미은행 SK(주) 등 6개사와 공동으로 개발한 이 카드는 집적회로(IC) 칩을 내장해 신용카드 기능 외에 교통요금이나 각종 온라인 상거래 대금결제가 가능한 복합 전자화폐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에는 모네타칩을 내장한 휴대폰을 출시할 예정"이라며 "휴대폰 하나로 모든 금융서비스를 다 받을 수 있는데 굳이 금융회사를 인수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국내 최대의 유통망을 갖고 있는 롯데도 퓨전금융을 통해 얼마든지 정통금융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미 백화점 카드 발급 등으로 카드사업의 노하우를 습득한데다 탄탄한 유통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퓨전금융이 가능하다는 것. 현재 롯데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정보는 롯데백화점 4백만명, 롯데닷컴 1백35만명, 롯데마그넷 80만명 등으로 질적인 측면에서 결코 SK에 뒤지지 않는다. 현대차의 금융전략-차를 금융서비스 거점으로 =반면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함으로써 신용카드업에 진출한 현대캐피탈은 조만간 자동차그룹의 특성에 맞는 신기술 카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함창식 기획실장은 "자동차회사 정유사 백화점 보험사 통신회사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한 장의 카드에 통합할 것"이라며 "통합카드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다양한 가격보상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제휴대상인 현대.기아자동차(1천만명) 오일뱅크(3백만명) 현대백화점(2백만명) 현대해상화재보험(3백만명) 등의 고객군을 활용할 경우 카드업계에 돌풍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또 이 카드를 통해 차 판매 및 잠재고객 확대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산업 경기가 일시에 추락하더라도 예전처럼 극심한 실적악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업 진출의 꿈 =삼성생명은 지난 5월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부터 한미은행 지분 6.75%를 추가 인수, 총 지분을 16.8%로 늘림으로써 칼라일(40.1%)에 이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삼성측은 단순 투자목적으로 매입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장차 은행업 진출 또는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위한 장기 포석의 측면이 강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어디 삼성뿐인가. 사실 뱅킹에 관심을 두지 않는 대기업은 없다. 최근 그룹내 계열분리를 통해 금융전업을 모색하고 있는 동양그룹 추연우 투자본부장은 "상당한 수준의 고객신뢰와 대중적 기반, 안정적인 수익창출이 가능한 은행업이야말로 금융의 꽃"이라며 "은행업 진출규제가 단계적으로 완화될 것에 대비해 기존 금융사들의 선도적인 역량 강화와 체질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은 이를 위해 생명 증권 카드 등 주력회사들을 대상으로 연내 외자유치 등을 통한 자본확충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동양은 특히 해외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그룹내 동양메이저를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정부가 원하는 금융전업에 가장 근접한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