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쁘띠 마르땅"(원제 Le Monde de Marty.감독 드니 바르도)의 슬픔은 단정하다. 시종 질서정연한 채 한번 풀어헤쳐지지도,터뜨려지지도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아픈 노인이 아내를 먼저 보내게 된다. 아내의 눈에 언뜻 죽음의 빛이 어리는가 하다간 예쁜 나무관위의 십자가를 비춘다. 관은 화장틀안에 넣어진다. 거기에서 끝이다. "철컹"하고 문이 닫히는 쇳소리로 서늘함을 안기거나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로 가슴을 태우지도 않는다. 남겨진 가족들의 눈물도 보여주지 않는다. 관객의 감정이 움찔하려는 바로 그 순간 카메라는 다른 곳을 향한다. 극한 절망속에서도 비어져 나오거나 질척하게 엉기지 않는 화면속 감정선은 어쩌면 "날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보는 이의 가슴 한쪽은 어김없이 베어지고 만다. 큰 줄거리는 70세 치매 노인과 10세 소아암 꼬마의 우정.70대 노인 앙트완(미셀 세로).전직 첩보원인 그는 눈꺼풀을 제외하곤 손끝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전신마비 알츠하이머 환자다. 6개월째인지,7개월째인지 하여간 꽤 오래 병원신세다. 삶과 죽음의 중간쯤에 놓인 노인에게 심술궂은 간호사는 아침마다 "오늘도 안죽었수?"라며 핀잔을 준다. 그가 알아들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지만 노인의 정신은 깨어있다. 기억이 계속 흐려지고,육체가 계속 쇠락하긴 하지만 분명 살아있다. "유감이지만 살아있지.뚱땡이같으니라구"세상을 향해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독설을 퍼부어대며 그는 고독하게 죽음을 기다린다. 그런 어느날 한 꼬마가 노인의 병실에 침입한다. 소아병동에 입원해있는 열살난 소아암 환자 마르땅(조나단 드뮈르게).앙트완의 동전을 훔치고 빳빳이 굳은 그의 팔다리를 장난감삼는 짓궂은 아이다. "싹수 노란놈같으니라구"눈만 껌뻑이는채 속으로 으르렁대는 그에게 소년이 묻는다. "뭐라구요?"소통이다. 꼬마는 마비된 육체에 갖힌 노인에게서 살아있는 인간을 발견한 유일한 사람.그뒤로 두사람은 나이를 뛰어넘어 친구가 된다. 이들에게 지워진 짐은 사실 버겁기 그지없다. 날로 흐려지는 정신을 부둥켜안으려 애쓰는 치매노인은 더 깊은 병을 감추고 자신을 돌보던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는다. 그 어린 나이의 소년은 몸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병마에 사로잡혀 고통당한다. 하지만 절제된 시선과 죽음마저 유머로 보듬어 안는 유쾌한 터치는 일견 진부한 설정마저 잊게 한다. 마지막 바다로의 여행에서 노인이 아이에게 주는 사랑과 축복은 스크린을 넘어 관객들에게도 따뜻하게 전해진다. 늘 한박자쯤 늦지만 사람좋은 남자 간호사,따뜻한 심성의 신입 간호사같은 주변의 캐릭터들도 온기를 더한다. 프랑스의 국민배우로 불리는 노장배우 미셀 세로(73)의 눈빛엔 삶을 초월한 이의 깊이가 있고 천진만난한 악동 마르땅역의 조나단 드뮈르게도 아이다우면서도 진실한 연기를 해냈다. 푸득,웃음이 나면서도 가슴이 아릿한 영화.모르는 새 눈물이 그렁해지는 아름다운,잔잔하지만 속깊은 영화다. 22일 개봉.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