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자정이 약간 넘은 시각 서울 신촌 로터리."목동,목동…" "화곡동,화곡동…" 귀가가 늦은 시민들이 빈 택시를 향해 목청껏 행선지를 외쳐대지만 기사들은 고개만 살짝 돌렸다가는 그대로 지나쳐버린다. 이러길 벌써 30여분째.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회사원 안모(29)씨는 다짜고짜 빈 택시의 문을 열고 승차를 시도했으나 뜻밖에도 문은 잠겨 있었다. 오히려 차가 갑자기 속력을 내는 바람에 길바닥에 넘어져 하마터면 큰 사고를 당할뻔 했다. "생각같아서는 차에 페인트를 던져 내일 아침 승차거부 표시로 딱지나 받았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서울시가 택시 불법영업에 대해 특별단속에 나선 이날.조만간 택시요금 인상을 앞둔 때문인지 시는 이 기간중 적발된 택시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평소보다 50% 더 부과한다는 으름장까지 놨다. 하지만 단속반이 보이지 않는 곳은 여전히 무법천지였다. 하기야 심야시간대의 승차거부같은 행위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손님 많을 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일당은커녕 사납금도 채우기 힘들다"는 기사들의 입장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도 이런 정황을 잘 아는터라 단속의 한계에 대해서는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시 교통관리실 관계자는 "택시는 제한돼 있는데 자정 무렵에 손님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고객과 기사를 모두 피곤하게 만드는 이같은 폐단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데도 서울시에서는 '여건 타령'이나 해가며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는 데 있다. 시민단체인 교통·환경연구소 이정인 소장은 "운전사 처벌로 서비스를 개선하겠다는 발상은 대증요법일 뿐"이라며 "기본적으로 사납금제 등 택시기사의 생활안정을 가로막는 요인이 있는 한 서비스 개선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는 사납금제가 존속하는 택시회사는 작년말 현재 8.1%에 불과하다며 강력히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기사들은 거의 없다. 시는 서슬퍼런 단속에 앞서 행정과 현실의 괴리를 먼저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주용석 사회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