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퍼주기'식 지원의 문제점..조명현 <고려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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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관광공사는 정부로부터 받은 남북협력기금 4백50억원 전부를 소진했다고 발표했다.
또 산업자원부 장관은 "북한이 남북경협에 적극 나설 경우 북한에 전력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국세청장도 통일기금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세금을 열심히 거두겠다는 요지의 기록을 남김으로써 그 진의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이에 대해 야권과 사회일각에서는 현 정부가 국민의 혈세로 대북 '퍼주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비난을 하고 있다.
반면 여권은 국민의 정부가 지난 정부와 비교해서 대북지원을 금액상으로 덜 했는데도 퍼주기 시비가 나오는 것은 야당과 보수층의 발목 잡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부에 따르면 1998∼2000년의 대북지원 규모는 1억9천2백49만달러,같은 기간 정부차원의 지원액은 1억1천7백88만달러로 95∼97년의 2억8천4백8만달러,2억6천1백72만달러와 비교할 때 각각 3분의 2,2분의 1에 못 미치는 수준인데 이를 퍼주기로 비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것을 금액상으로만 단순 비교해 야당의 발목 잡기라는 식으로 돌려버릴 일이 아니다.
왜 '퍼주기'라는 비판이 생기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남북이 양자관계를 상호주의 원칙하에서 균형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대북정책의 올바른 해법이 나올 수 있다.
퍼주기라는 비판을 단순히 북한에 지원한 액수의 개념으로만 파악해서는 안된다.
사실 남북간의 평화와 공존이 얻어질 수 있다면,이보다 훨씬 큰 금액을 북한에 지원한다고 해도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많은 국민들이 퍼주기라는 말에 수긍하는 이유는 우리의 수많은 지원에 대한 북한의 태도와 이러한 북한의 태도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는 것이 있으면 어느 정도의 반대급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세상 사는 이치인데,우리가 대북 햇볕정책의 반대급부로 받은 것은 북측의 고자세와 이해하기 힘든 행태 뿐이다.
우리가 바라는 반대급부는 남북간에 다같이 필요한 관계 정상화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것이라고는 장관급 회담의 취소,북한상선의 돌발적인 영해침범,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지연,금강산 육로관광 연기 등 남북간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들 일색이다.
또한 이러한 북한의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태도에 대한 정부의 지나치리 만큼 저자세적인 대응도 국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그 액수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퍼주기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퍼져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지원할 것은 지원하더라도,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고,대북 관계에서 실리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상호호혜 원칙에 입각한 북한에 대한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최근 어려워진 국내 경제기반의 복원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는 대북관계에 있어 군사력 못지 않게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우리의 경제력이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후 대북 경협사업이 노다지나 대박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헛된 꿈을 버리고,우리 경제에 주름이 가지 않는 한도내에서 북한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족히 남한 경제력을 빨아 들일 수도 있는 블랙홀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독일의 경우를 살펴볼 때 기우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반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대북정책과 관련,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초조함과 서두름이다.
초조해 하고 서두르면 상대에게 이용당하게 된다.
통일 대업은 향후 몇대의 대통령이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할 일이라는 각오로 차분히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좀 더 건강하고 생산적인 남북관계가 건설될 수 있을 것이다.
chom@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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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