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미 마사루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해 11월 경기전망을 놓고 사카이야 다이치 전 경제기획청 장관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경기가 활주로를 막 이륙한 비행기나 마찬가지니 엔진이 추진력을 더 낼 수 있도록 힘(금융지원)을 몰아 주어야 한다는 사카이야 전 장관의 주장에 하야미 총재는 "걱정할게 없다"며 맞섰다.

일본 경제는 회복기에 들어서 있으며 금융완화 등 정책적 뒷받침을 하지 않아도 굴러갈 수 있다는게 하야미 총재의 소신이었다.

그러나 그후 불과 3개월간 일본 경제는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며 고장을 알리는 적신호가 줄기차게 쏟아져 나왔다.

산업생산 수출 설비투자 소비 등 실물경제의 거의 모든 지표와 주식시장이 경보음을 울리며 경기가 고꾸라지고 있음을 예고했다.

지난 1월 광공업생산의 전월대비 감소폭은 3.2%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일 닛케이평균주가는 장중 한때 1만2천5백엔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15년만의 최저치를 다시 경신했다.

일본은행이 지난달 28일 콜금리와 재할인율을 0.1%포인트씩 전격 인하한 것은 일본 경제의 심각성을 인정했다는 증거다.

더 이상 내버려 두면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아 장기불황 터널로 다시 빨려 들어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들은 일본은행의 처방이 일단 경기하강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속병을 치료하고 원기를 되찾기까지는 악재가 너무 많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일본 경제를 위협하는 복병으로 ''불신''과 ''불안''의 연쇄고리를 꼽고 있다.

한계 수위를 넘어선 모리 내각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한 정치적 공백, 그리고 경제적 장래에 대한 불안이 모든 처방을 헛수고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JP모건증권의 한 분석가는 "도쿄증시의 위탁매매는 절반이 외국인 투자가에 의한 것"이라며 "외국인들의 일본증시 불신과 실망은 그 어느때보다 크다"고 지적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유난히 두드러진 외국인들의 일본주식 ''팔자''가 언제든지 가속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기업들은 앞으로 경기가 더 나빠질 것으로 보고 내년도 설비투자를 6% 줄인다며 긴축으로 돌아섰다.

2000년 설비투자증가율이 1999년보다 7.7% 증가한 것에 비하면 ''급선회''한 것이다.

아사히신문이 최근 2백개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긴급실시한 조사에서 ''경기가 하강국면에 들어섰다''는 응답은 73%에 달했다.

시마나카 유지 산와종합연구소 조사부장은 "일본은행의 금리인하조치는 근본처방이 되지 못한다며 시장은 제로금리 선회와 자금공급 확대를 바탕으로 한 획기적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