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인수 < 법무법인 태평양 미국변호사 isp@lawyers.co.kr >

미국에서 경찰이 범죄 피의자를 체포하면서 꼭 일러주도록 돼 있는 것이 ''미란다규정''이다.

1966년 미국 대법원의 미란다사건 판결에서 비롯된 이 원칙은 비록 중죄를 지은 범인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묵비권''이나 ''변호사 선임권''등이 있음을 알려줘야 한다는 적법절차의 중요한 내용이다.

절차를 중요시하는 미국의 전통은 사회 각 분야에서 잘 나타난다.

로펌이나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복잡한 인터뷰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이번 대통령선거에 대법원이 사상 최초로 직접 개입하게 된 것도 미국의 엄격한 법 제도와 절차 때문이다.

또 주요 고위직은 반드시 ''청문회''라는 중요한 인준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때문에 노동부장관 지명자가 불법이민자 고용문제로 결국 사퇴하게 된 것 등은 투명하고 잘 짜여진 절차가 그 사회를 건강하게 지탱하고 다수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절차''보다는 ''효율''을 더 중요시해 왔다.

가난하고 사람은 많을 때,부족한 자원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효율''뿐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고 건축물도 나중에 무너질 망정 우선은 빨리 지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한국적 사고방식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의식도 많이 깨었다.

또 정보화 덕택에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도 금방 알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는 배고픈 것보다 배아픈 것을 참지 못하고,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소수를 위한 효율''보다는 ''다수를 위한 절차''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위로는 나라의 고위직 임명이나 국회의 예산통과에서부터,아래로는 일선 부서의 민원처리까지 ''효율''을 빙자한 소수의 뒷거래가 아닌 깔끔하면서도 투명한 ''절차''가 준비되고,그러한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는 ''다수를 위한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