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바다와 맞닿은 황량한 벌판.칼끝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적막을 가른다.

차디찬 바람은 살갗을 매섭게 할퀴어댄다.

"드물게 따뜻한 날"이라는데도 겹겹의 옷가지를 뚫고 얼음같은 냉기가 스민다.

중국 베이징에서 북동쪽으로 5백50km 떨어진 라이오닝성 싱청.영하 20도가 우습다는 대륙의 끝 언덕배기에 수백년은 된 듯한 퇴락한 토성이 서있다.

충무로의 스타일리스트로 손꼽히는 김성수 감독의 초대형 무협액션 "무사"(제작 싸이더스)의 막바지 촬영현장이다.

4백여평의 맨땅에 3개월에 걸쳐 쌓아올린 해안 토성 세트는 영화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전투지.지난 8월초 베이푸투어를 출발해 6천마일 거리의 중국대륙을 가로지른 강행군의 종착지다.

지난달 28일 "무사"의 최종 제작현장인 토성안은 장즈이 정우성 주진모를 비롯한 배우들과 스탭 1백여명으로 아침 일찍부터 북적거렸다.

머리를 길게 늘려 붙인 정우성은 노비 출신의 창술의 달인 여솔역.원군에 쫓기는 명나라 부용공주(장즈이)를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역이다.

촬영중 입은 부상으로 목발을 짚고 나타난 그는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린채로도 한쪽 입가를 당겨웃는 특유의 미소가 눈부셨다.

"비트""태양은 없다"에 이어 김감독과 세번째 호흡을 맞추는 그는 "감독님은 배우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주는 함께 일하기 즐거운 사람"이라며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출연제의에 응했다"고 했다.

세련되고 고독한 현대인의 전형처럼 여겨졌던 그는 "사실 늘 시대물을 하고 싶었다.

영화 "동사서독"을 제일 좋아하고 쓰고싶은 시나리오도 시대물이었는데 이번에 분장을 해보니 썩 어울리는 것 같다"며 싱긋 웃는다.

귀족출신 장군인 최정역으로 출연하는 주진모는 부용공주를 둘러싸고 정우성과 삼각관계에 놓인다.

30kg에 달하는 의상과 상당량의 중국어 대사때문에 고생이 많다는 그는 "팀에 제일 늦게 합류했고 많은 인원과 팀웍을 맞추는 작품이 처음인데다 역할의 성격변화가 많아 그동안의 작품보다 몇배이상 힘이 들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최정과 사랑에 빠졌다"며 남다른 의욕을 과시했다.

단연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이는 부용공주역의 장즈이다.

이안감독의 "와호장룡"이나 장이모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에서 주목받았던 그는 쏟아지는 질문과 사인공세에도 해사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언어보다 강추위와 무서운 감독님이 제일 힘들다"는 장은 "중국 격언에 "글이 그 사람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다.

베이징에서 열린 한국영화제에서 "태양은 없다"가 상영되었는데 폭발력있고 힘있는 영화라는 평을 받은 것으로 안다.

시나리오보다 감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명감독아래서 배울 것이 많으리라는 생각에 흔쾌히 출연에 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배우는 연기력 이전에 인간됨이 갖추어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영화계의 아버지라는 안성기씨에게 많은 감명을 받았다"며 "다양한 영화철학과 사고를 지닌 사람들과 작업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며 갓스물을 넘긴 나이답지 않은 야무진 대답으로 주변의 감탄을 샀다.

김감독은 장에 대해 "기본기가 잘 갖추어진데다 시나리오 이상의 역할을 해내는 훌륭한 배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먼길을 이 많은 사람들이..."극중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안성기의 대사대로 "그 먼길을 떠난 그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무사"가 내년 5월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돌아올지 벌써부터 기대가 모아진다.

중국 싱청=김혜수 기자 dearsoo@ 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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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사'' 내용 ]

1375년.중국대륙은 원.명의 교체무렵 피바람에 휩싸인다.

한반도에서는 고려말 친명파였던 공민왕이 시해당하고 고려에 왔던 명나라 사신들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고려는 명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사신단을 파견한다.

영화 "무사"는 이들 사신단중 두번다시 고국땅을 밟지 못했던 역사속 고려인들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혼란의 한복판에 버려진 고려무사 9명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벌이는 대여정이 축이다.

사막으로 계곡으로 평원으로..끝없이 펼쳐진 이국땅에서 적군과 싸우며 고난과 역경을 감당해야 했던 무사들의 행로에 눈물겨운 멜로가 가미된다.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한 무협액션이지만 인간들의 관계에 더 주목했다는게 감독의 설명.

김성수 감독은 "구로자와 아키라나 샘 페킨파 감독에 열광했었고 영화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들처럼 작품들을 만들고 싶었다.

무사는 사실감있는 액션속에 고난에 처한 사람들이 내적 변화를 겪으며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린 휴먼 드라마"라고 했다.

총 제작비 52억원,1백% 중국 현지 촬영,안성기 정우성 장즈이 주진모등의 호화캐스팅,3백명에 달하는 스탭과 엑스트라,3천여 쇼트(장면)...

한국영화사상 전례없는 규모를 자랑하는 "무사"에는 내로라는 해외 스탭들도 함께 하고 있다.

"패왕별희""현위의 인생"등에서 미술을 맡았던 중국의 후오팅샤오 감독이 미술을 맡았고 음악은 "에반겔리온"에서 활약한 일본 작곡가 사기스 시로우의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비트"에서부터 감독과 호흡을 맞춰온 김형구 촬영감독과 이강산 조명감독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