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 기양금속, 수증기를 내뿜는 3백평 남짓한 도금공장에서 50여명의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손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한켠에는 가동하지 못하는 기계가 서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다.

전국의 공업고등학교나 직업훈련원을 찾아가 애원하다시피 ''모셔와도'' 한달도 안돼 떠나버린다.

젊은이들은 ''즐겁게 돈 벌겠다''며 유흥업소로 빠져나가고 나이든 사람들은 차라리 공공근로를 하는게 낫다며 말도 없이 사라진다.

1~2년 일을 해 쓸만하다 싶은 기능직들마저 다른 곳에서 월급을 더 준다는 말을 듣고 보따리를 싼다.

이러다보니 내국인 근로자는 병역 문제로 사실상 움직일 수 없는 병역특례요원만 남는다.

결국 빈자리는 외국인 근로자들로 채울 수밖에 없다.

배명직 사장은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쏟아진다고 야단들인데 도대체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고 목청을 돋운다.

오죽하면 시간만 떼우고 가는 일용직을 무더기로 쓰겠느냐는 것이다.

''제2의 실업대란''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힘들고 위험하며 더럽다''는 이른바 3D업종에서는 심각한 인력난이 빚어지고 있다.

일자리가 없어 빈둥거리면서도 힘든 일은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보수와 직급이 형편없어도 대기업이나 정보통신업 서비스업 같은 ''품위있고 즐거운'' 곳만 쳐다보는 게 요즘의 풍토다.

도금업계에 못지않게 인력난이 심한 곳이 염색업계다.

화학재료를 쓸 경우 냄새가 나거나 뜨거운 공기를 마셔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규한 한국염색공업협동조합 이사는 "대부분의 공장이 자동화돼 근로환경이 예전같지 않은 데도 여전히 인식이 달라지지 않고 있다"며 "일부 업체에선 절반 정도의 생산설비가 놀고 있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 통에 어쩌다 구직자를 구하면 일자리에 관계없이 사람을 받아 놓는다.

반월공단의 공구제작 업체인 예스툴은 제품생산에 25명이면 충분하지만 3명을 더 고용하고 있다.

직원이 갑자기 그만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정수 사장은 "가뜩이나 물건이 팔리지 않는데 인건비를 더 써야 하니 경쟁력이 생기겠느냐"고 반문했다.

구인·구직 통계를 보면 이런 현상이 한눈에 드러난다.

올 3·4분기중 평균 구인배율(구인자를 구직자로 나눈 배수)은 0.58배였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1백명이라면 쓰겠다는 사람은 58명이라는 뜻이다.

전체적으로 그만큼 일자리가 모자란다는 뜻이다.

하지만 3D형 직종에서는 오히려 일자리가 남아돈다.

금속연마에서는 구인자가 2.95배,정밀기기제조에선 2.86배,플라스틱제조업에선 2.32배였다.

구인자가 2∼3배나 되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대기업=취직난,중소제조업=구인난'' 현상은 고착화될 조짐이다.

외국인 근로자를 더 쉽게 쓸 수 있게하거나 고용보조금을 더 주는 등의 대책이 없으면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게 3D업종 경영자들의 하소연이다.

최승욱.유영석 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