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감사원이 발표한 공기업 경영실태 감사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공익을 목적으로 설립된 공기업을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과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기업이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노동생산성 증가는 45%인데 반해 인건비 상승률은 68.9%에 이르고 자본생산성도 35%가 하락한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공기업은 공공기관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기업이다.

쉽게 말하면 국가가 주인인 기업인 것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 아닌가.

그러니 공기업의 주인은 우리 모두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기업을 주인 없는 기업이라고 부른다.

주인 없는 집 치고 잘되는 집은 별로 없다.

주인 없이 파출부가 대신 맡아 하는 살림살이가 알뜰할리 없다.

주인 같으면 근검절약하여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려고 하지만, 월급받고 일하는 파출부는 규모있는 살림을 위해 애쓰지 않는다.

공기업 경영도 파출부의 살림살이와 다르지 않다.

주인이 있는 사기업은 절약하면 자기 돈이지만, 주인 없는 공기업은 절약하면 남의 돈이고 쓰면 자기 돈이다.

그러니 애써 규모있게 경영할 동기가 적다.

어쩌면 공기업 최고경영자의 목표는 임기중 별 탈 없이 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공기업의 경영이 비효율적이고 방만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공기업 개혁의 출발은 민영화를 통한 주인 찾아주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물론 공공성이 매우 높거나 사기업이 맡기에는 수익성이 높지 않은 공공사업의 경우는 할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공기업은 하루 속히 민영화, 주인을 찾아 주어 경영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사기업이 공기업보다 효율적 기업형태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도 민영화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이 민영화다.

문제는 민영화 추진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지난 98년 수립된 민영화계획에 따라 공기업의 수가 1백8개에서 90개로 줄어들고, 인원도 3만여명 감축됐다고는 하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 보면 불만스럽기만 하다.

공기업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포항제철에 대한 지분제한 철폐로 주인있는 민영화의 길은 터놓았다.

그러나 은행과 같이 지분의 광범한 분산으로 인한 지배주주 공백을 틈타 정부의 경영관여가 계속될 가능성은 여전하고,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 거대 공기업의 민영화는 계획만 있을 뿐 추진실적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민영화가 지지부진한 원인은 여러 가지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민영화가 추진주체의 이해관계와 상충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의 이익엔 부합될지 몰라도, 이를 추진하는 정책결정자들과 공기업 경영진의 사익과 상충될 수 있다.

지금까지 공기업은 퇴직 공무원들의 훌륭한 재취업 장소였다.

오랜 기간 축적한 재직때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 재취업 기회를 갖는 것을 무조건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공무원들의 공기업 재취업은 재직때 경험을 활용한다는 취지보다는 예우 차원에서 경력과 무관한 분야에 낙하산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니 퇴직 후 재취업을 염두에 두는 이른바 ''회전문효과''로 인해 공기업의 민영화는 사심 없이 추진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공기업의 구조조정이 원활히 추진되기 위해선 구조조정의 주체를 구조조정해야 한다.

정부 기업 은행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중립적인 기구가 실질적 권한을 갖고 사심 없이 추진해야 한다.

지금처럼 공익과 사익이 상충되는 구조하에선 시간만 끌 뿐 실질적 구조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구조조정 추진주체를 구조조정하지 않고는 내년 2월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겠다는 정부의 장담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 필자 약력 =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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