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이 계속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진 데다 관련제도까지 바뀌어 ''몸값''이 폭락일로다.
자격만 따면 한평생 명성과 부(富)를 거머쥐던 것은 ''흘러간 노래''가 돼버렸다.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 월급을 감당하지 못해 전직하는 변호사,거리로 나서 ''생존권 보장''을 외칠 수밖에 없게 된 의사,일자리를 얻지 못해 하릴없이 놀고먹는 박사들….
말 그대로 ''사''자 수난시대다.
과거에 누린 독점적 혜택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이들 직종의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견해가 많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달라진 세상이 야속하기만 하다.
◆변호사=개인변호사 사무실을 열고 활동중인 서울의 A변호사는 이달초 문을 닫았다.
한동안 쉬며 다른 일거리를 찾아볼 예정이다.
사무실 임대료와 사무장 등 직원들의 급여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다.
사건 수임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초대형 로펌과 중소형 부티크 로펌의 공세에 대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어서 스스로 문을 닫아버렸다.
아직 초년인 B변호사는 전업을 선택했다.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지원하는 벤처기업 창업을 준비중이다.
기업체 법무팀으로 들어갈 생각도 해 보았지만 포기했다.
과거엔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입사 즉시 임원대우가 보장됐지만 요즘은 과장급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마나 자리도 마땅치 않고 연봉도 형편없어 아예 벤처 창업을 택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
지난 80년말 8백90명에 불과했던 변호사는 작년말 3천8백여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현재는 4천2백20명에 달하고 있다.
◆의사=의료보험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해 의약분업으로 완전히 주가가 폭락했다.
처방전만 써주어서는 건물 임대료와 시설 리스비는 물론 간호사 월급도 줄 수 없다는 게 동네의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오죽하면 요즘 의과대학 1학년생들은 휴학계를 내고 다시 대입 수능시험을 준비할 정도다.
의사 숫자(면허소지자 기준)는 지난 80년말 2만2천여명에서 작년말엔 6만8천여명으로 불어났다.
요즘도 해마다 3천명이상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사중 전문의 비율도 80년말 37.3%에서 작년말엔 64.2%로 높아졌다.
경쟁이 치열해져 고생스런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의약분업이 정착되면 이렇게 몸부림쳐도 ''월급쟁이''와 별 차이가 없게 된다.
이렇게 시장여건이 나빠지자 외국행이나 전직을 꿈꾸는 의사가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일부 동네의원은 진료과목이 다른 의원들과 합쳐 중형병원을 만들고 있으며 아예 다른 병원에 ''취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박사=박사들에게 가장 큰 일자리는 대학이지만 공급에 비해 수요가 턱없이 모자란다.
생계를 잇기 위해서는 ''헐값''의 시간강사라도 뛸 수밖에 없다.
전국대학강사노조에 따르면 국·공립대 강사료는 시간당 2만8천원선.
1주일에 6시간씩 강의한다고 치면 월수입은 67만여원.
1주일에 10시간을 강의해도 1백12만원 밖에 안된다.
사립대는 형편이 더 열악하다.
시간당 2만∼2만4천원이 보통이고 1만4천원을 주는 대학도 있다.
일반 기업체에 취직해도 큰 혜택이 없다.
''부장급''은 언감생심이다.
일반 사원들 사이에도 박사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에 따르면 올 2월말 현재 박사학위 소지자는 국내 7만3백60명,외국 2만8백64명 등 모두 9만1천2백24명.
이중 외국박사 학위 취득자는 본인이 학술진흥재단 등에 신고해야 통계에 잡히기 때문에 실제 박사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국내외에서 매년 8천명 가량의 박사가 배출되지만 이중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서 생기는 일자리는 3천개 정도.
기업체나 공직에 취직도 하지만 박사의 절반 정도가 실업자 대열에 낀다는 얘기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