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 < 소설가 www.jangyk@hmpj.com >

부처님 오신날이 다가와 내가 지나다니는 한 가로에는 연등이 함박꽃처럼 걸리고 밤이면 등에 불이 켜져 꽃나무 행렬처럼 그 아래가 환했다.

무언가 잡다한 세간의 일에 시달리다 차창으로 지나는 꽃등을 보고 있노라면,수천 년 된 설화속인 듯 몽환적인 느낌까지 들어서 "으흥,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 왔군"즐겁고도 가벼운 한숨까지 흐른다.

그 한숨을 따라가 보면 외조모를 따라 불탄일 절에 가서 등을 올리고 초록색 푸성귀가 나오는 절밥을 먹으며 무언가 아이다운 소원을 말해보던 어릴 적 기억에 닿는다.

밑에 동생이 많이 아프던 어느 날 청동의 부처상을 열심히 베껴놓고 그 위에 "부처님 제발 제 동생을 낫게 해주세요"라고 편지를 쓰던 아주 어린 날의 기억이다.

그 아이다운 간절한 바람과 염원이 어떤 작용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도,어린 누나가 그보다 더 어린 동생을 위해 기도하던 날의 기억은 좋아하던 순정만화 속 이별장면처럼 아스라하다.

그후 세월이 흘러 나는 새로이 성경을 읽고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기독교도가 되었지만 순정만화 같던 유년의 기억은 나를 저 몽환적인 불탄일의 절마당으로 데려간다.

꽃은 피고 지고 나무들도 제각각 잎을 터뜨리고 번성하는 늦은 봄날이나 초여름날,인간의 생에 깊은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떠난 또 한 인간의 생을 기억하고 그 앞에 인사하는 일은 나처럼 어린 한 인간의 마음에도 뭉클하게 와서 닿았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꽃등 아래를 지나 집에 닿았다.

오늘밤 나는 수천년된 꽃나무 아래를 거닐 듯 환한 꿈을 꿀 것이다.

꿈속에서 무언가 간절히 바라고 염원하며 감동하는 인간,그 인간의 꿈에 줄줄이 걸린 환한 꽃등 나는 그것이 내 어린 날의 천진하고도 뭉클한 마음이라 믿는다.

그것 없이 살수 있는가.

"글쎄..."

잠시 사이를 두고 나는 대답한다.

"나라면 그것과 함께 살고 싶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