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재계는 좌절을 딛고 희망과 질서를 찾는데 피와 땀을 흘렸다.

부채비율 2백%가 생존을 가르는 잣대가 되면서 오너들은 생살을 도려내는
마음으로 자산을 매각해야 했다.

반도체 등 7개업종의 빅딜에 도장을 찍은 것도 생존을 위한 조치였다.

구조조정의 때를 놓친 대우는 시장에서 버림받았다.

책임 경영이 화두로 등장하며 사재출연이라는 여론몰이도 있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자동차사업 부실을 책임지고 삼성생명 지분을 내놨다.

공정거래위원회 및 국세청의 서슬퍼런 조사도 잇따랐다.

탈세혐의가 드러난 한진그룹은 곤욕을 치렀다.

과거를 바로잡는데 못지 않게 시대 변화를 좇는 것 역시 재계의 공통과제
였다.

21세기 경영혁신 운동인 6시그마가 재계로 확산됐다.

인터넷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시련을 이겨낸 재계가 다시 출발점에서 신발끈을 고쳐메고 있다.

-----------------------------------------------------------------------

기묘년은 대우 몰락의 한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만큼 대우 사태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온 국민은 재계 순위 2위(자산 기준)의 공룡 그룹이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숨가쁜 순간이 이어졌다.

그 사이 대우해법을 두고 논란도 적지 않았다.

생존의 기로에 선 김우중 회장은 지난 7월 19일 모든 것을 내놓고 회사를
살리려고 애썼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김 회장이 백기를 들고 눈물로 애원할 때도 시장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시장의 논리는 냉험했다.

정부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장의 뜻에 따라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외줄에서 곡예하는 것 만큼이나 아슬아슬했다.

자본시장은 연일 출렁거렸다.

외환위기 직전의 위기감이 팽배했다.

정책당국자들은 시장을 지키기 위해 부심했다.

정부는 자본시장 안정대책을 잇따라 내놨다.

더 이상 쓸 카드가 없을 정도로 극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자본 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대한 줄이며 조용히 쓰러지는게 99년 대우의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막을 내린 대우 신화의 한 가운데는 김우중 회장이 있었다.

고학으로 대학을 마친 김 회장에게 가난은 떨쳐버려야 할 대상이었다.

67년 맨주먹으로 사업을 시작한 그는 온갖 시련을 딛고 쾌속 질주했다.

질곡과 좌절도 없지 않았다.

그때마다 김 회장은 불사신같이 우뚝 일어섰다.

그래서 그를 성취욕의 화신으로 부르기도 했다.

김 회장의 경영철학은 단순명료했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도 있다는 것이다.

작년초부터 대우가 유동성 위기에 몰렸을 때도 측근들에게 이점을 강조하며
희망을 불어넣었다.

성품이 그만큼 낙천적이다.

세상을 밝게 보았기에 세계경영의 기치를 내걸고 지구촌 오지 곳곳에 대우
의 깃발을 꽂을 수 있었다.

그런 그도 IMF(국제통화기금)의 험한 파고를 온전히 넘지 못했다.

그가 30년 넘게 걸려 만든 경영 매뉴얼에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해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차입경영의 끝이 무엇인지에 대한 경고메시지도 없었다.

그 결과 10만여명의 대우가족을 뒤로 한채 화려했던 무대에서 쓸쓸히 퇴장
해야 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17일 외국으로 떠났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나들이였다.

명예를 중시했던 그였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할 말도 없지 않았지만 끝까지 말을 아꼈다.

경제에 끼친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못내 아쉬워 지난달 대우 임직원에게 회한으로 가득찬 고별사를
보내 왔다.

"우리가 소명처럼 추구했던 창조 도전 희생의 여정이 이 순간 못내 가슴에
맺혀 옵니다. ...그동안 대의만을 생각하며 희생을 강조한게 큰 부담으로
남습니다"

대우 임직원들은 김 회장의 마지막 메시지를 접하며 타국에서 방황하는
김 회장을 연상했다.

대우의 몰락과 시대를 풍미한 김 회장의 퇴진은 동료 기업인에게 많은
교훈을 줬다.

내실경영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고 시장의 논리도 명확하게 알게됐다.

인간 김우중 회장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엇갈렸다.

공과가 함께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뛰어온 김 회장은 뒤를 돌아다볼 틈이 없었다.

주위의 충고를 들을 새도 없었다.

오직 자신의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을 과신했다.

결국 사업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그의 모든 업적은
물거품이 됐다.

김 회장은 퇴장했지만 김 회장이 구슬땀을 흘리며 일궈온 기업들은 세계로
뻗어가길 모든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위기에서 판단을 그르쳐 비록 기업을 지키지 못했지만 김 회장의 기업가
정신은 또다른 세기에도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 이익원 기자 iklee@ked.co.kr >

[ 99년 대우사태 일지 ]

<> 1월 21일 :3조원 규모 재무구조개선 계획 발표
<> 3월 22일 :대우 삼성 삼성차 사업교환 기본 합의
<> 4월 19일 :대우중공업 조선부문 매각 등 구조혁신방안 발표
<> 6월 30일 :대우그룹 사장단 전원 사표 제출
<> 7월 19일 :10조원 담보제공, 협조 융자신청
<> 7월 25일 :김우중 회장 경영정상화후 퇴진 선언
<> 8월 16일 :자동차 계열 중심 6개사만 남기는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 8월 26일 :12개 계열사 워크아웃 결정
<> 8월 30일 :채권은행단 대우증권 인수계약
<> 10월 8일 :김우중 회장 전경련 회장직 사퇴
<> 10월 28일 :채권단, 대우 실사 결과 33조5천억원 자산손실금액 발표
<> 11월 1일 :12개 워크아웃 계열사 사장단 사표 제출
<> 11월 23일 :김우중 회장 임직원 가족에 고별사 전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