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곤 대표 약력 ]

<>52년 전북 전주 출생
<>서울대 독어교육과
<>극단 아리랑 대표.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 의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객원교수
<>국립중앙극장 전속단체 자문의원
<>93년 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청룡상 남우주연상.
<>제1회 현대연극상 최우수작품상 연출상
<>연극 아리랑(86) 유랑의 노래(98), 창극 백범 김구(98), 심청전(9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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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예술의 창작과 현대화를 통해 국립중앙극장을 민족공연예술의 산실로
만들겠습니다. 당분간 저의 모든 창작활동을 중단하고 국립극장이라는 작품을
만드는데 전념하겠습니다"

지난 8일 국립중앙극장장으로 내정된 김명곤(47)씨.

영화 서편제의 "유봉"으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그는 "우리시대의
광대"다.

연출가 배우 작가 극단 대표 등 1인4역을 소화해내며 불과 한달전까지
서민들의 애환을 찾아 무대와 장터를 누볐다.

그가 7개 단체 3백35명의 단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문화예술공연단체의
수장이 된 것이다.

"기쁜 마음보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앞섭니다. 국립극장에 대한 주위의
우려와 걱정을 어떻게 풀어나아갈 것인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내년부터 책임운영기관으로 거듭나는 국립중앙극장의 첫 민간인출신
극장장.

경영책임을 묻는 책임운영제는 국립극장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제도.

예산과 인력은 정부에서 지원하되 경영은 민간인이 맡는다.

임기 3년의 극장장을 맡게 된 김씨는 공무원 전보권과 계약직.기능직 임명권
등 국립중앙극장의 살림살이를 해나게된다.

그의 앞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시민들과 유리된 문화공간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극장의 이미지 쇄신과
방만한 운영의 효율화하는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이다.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작품선정이나 관료조직처럼 경직된 조직문화가
예술창작활동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에 공감합니다. 앞으로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극장을 외부에 대폭 개방하고 바깥과의 연계활동을 활성화
해 우수한 작품을 공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갈 생각입니다"

그는 무엇보다 전통연희의 현대화와 삶의 건강성이 조화를 이룬 공연예술
개발에 주력해 나갈 생각이다.

그가 의장을 맡고 있는 민족극협의회나 지난 여름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완판 창극 "심청전"은 이러한 그의 예술관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국립극장 고유의 색깔을 갖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립극장이 예술의전당
이나 세종문화회관처럼 수익성 높은 사업만을 추구할 수는 없는거죠. 대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국립극장만의 공연예술을 선보이겠습니다"

김씨는 대학교 3학년때 김제국악원에서 판소리를 듣고 그 길로 고향인 전주
시내를 전부 돌며 판소리 음반이란 음반은 모두 사서 들을 정도로 전통소리에
애착을 가졌다.

김씨는 소리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대학4학년 때부터 명창 박초월 문하에
들어가 10여년간 사사했다.

80년대에는 마당극을 통해 사회에 비판의 소리를 토해내기도 했다.

"나름대로 전통에 대한 애착을 무대에 담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15년간
어렵고 가난한 극단살림을 살면서 내실하게 꾸려 왔습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은 행정경험 전문가를 영입해 도움을 받아 국립극장을
한국의 대표적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키겠습니다"

70년대 말 "뿌리깊은 나무" 기자와 배화여고 교사이후 인생에서 세번째로
월급쟁이로 자리를 옮긴 김명곤씨.

그가 어떤 식으로 국립중앙극장에 새바람을 불어 넣을지 주목된다.

< 김형호 기자 chsan@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