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이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공무원들의 빗발치는 항의전화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원장실을 폭파시키겠다"는 극단적인 협박까지 받았다는 후문이다.

KDI가 정부 의뢰를 받아 작성한 "공무원연금제도 구조개선방안"이
한국경제신문에 공개된게 화근이었다.

피해자인 공무원들의 허탈감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공무원연금의 부실을 초래한 장본인(정부)의 반응이었다.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KDI 보고서는 참고용일 뿐"이라며 애써 태연한
표정이었다.

정부는 당초 KDI의 용역 결과를 토대로 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올해안에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국회에 올리기로 공약했다.

그러나 지난 8월 정부에 제출된 KDI의 "처방전"은 언론에 공개되기 전까지
관계당국의 책상속에 감춰져 있었다.

한국국방연구원이 국방부 의뢰를 받아 만든 군인연금 개선안도 국방부
캐비닛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공무원 및 군인들의 반발을 우려해 몸을 사리고
있다는 해석을 낳는 대목이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은 정부에겐 "판도라의 상자"다.

공무원연금 가입자는 공무원과 국공립학교 교원을 포함해 1백만명에 달한다.

군인연금 개혁안도 장기하사관과 장교 등 15만명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초미의 관심사다.

정부가 이들 돈주머니를 수술하기 위해 상자를 열면 전체 공무원과 직업
군인은 물론 이들 가족의 심기까지 불편해진다.

더 걷고 덜 주는게 연금의 고질을 치료하는 유일한 처방이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의 경우 올해 3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오는 2030년엔
연간 적자규모가 1백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게 KDI측의 경고다.

군인연금도 지난 73년 기금이 고갈된 이후 매년 5천억~6천억원의 적자를
나랏돈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연금의 기형적인 구조를 방치할 경우 막대한 적자는 고스란히 후손들의
몫으로 남는다.

그러나 정부는 책임은 미룬채 병을 감추는데만 급급한 모습이다.

그 사이에도 병은 곪아가고 있다.

관계당국의 책상속에서 잠자는 연금개혁안을 조속히 꺼내 공개리에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 유병연 경제부 기자 yooby@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