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골드만삭스증권의 서울지점에 근무하는 민지홍 이사.

그에게 요즘 일거리가 하나 늘었다.

한국의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하는 것.

홍콩에 있는 직접투자팀의 20여명 전문가들이 수시로 한국을 찾아 그와
회의를 갖는다.

국민은행 5억달러 투자, 성업공사 부실채권 매입 등 굵직한 투자만 해온
골드만삭스가 벤처에까지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민 이사는 "3~4개 비상장 벤처기업을 검토중으로 빠르면 연내에 투자기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창업기업보다는 성장단계에 있는 기업에 업체당
수백만달러 가량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벤처기업인 다우기술이 최근 미국에 인터넷서비스업체 큐리오를 설립할 때
4백만달러를 투자했던 H&Q는 이를 신호탄으로 코리아벤처 투자를 확대키로
했다.

H&Q 아시아퍼시픽코리아의 이재우 대표는 "한국에 투자하기로 한 3억5천만
달러중 5천만~1억달러를 벤처기업에 투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성공벤처로 꼽히는 로커스는 일찌감치 영국계 금융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케이스.

플레밍그룹의 자회사인 자딘플레밍일렉트라는 올해초 로커스의 지분 34%를
인수하며 1천6백만달러를 투자했다.

지난 3월에는 반도체용 인쇄회로기판(PCB)를 생산하는 심텍이 지분 40%을
넘기고 미국의 보험회사인 AIG로부터 2천2백만달러를 유치해 화제를
모았었다.

해외 자본시장에 코리아벤처 투자의 불길이 서서히 지펴지고 있다.

벤처기업 5천개 육박과 코스닥 활황 등 코리아벤처 열풍이 이머징마켓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앞장서서 벤처를 육성하고 있다는 시각의 확산도 외국자본이
코리아벤처에 매력을 느끼는 요인이다"(산업투자자문 배정원 차장)

"국민PC 도입처럼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풍토를 정부가 조성하는 데
대해 외국인투자자들은 좋게 평가한다"(골드만삭스 민지홍 이사)

코리아벤처 투자는 아직까지 한국의 벤처캐피털 설립에 참여하는 형태가
주류다.

외국인이 지분을 보유한 벤처캐피털은 15개사.

국민은행은 국민창투 보유지분 62.5%를 영국 리젠트퍼시픽그룹에
4백67억5천만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지난 8월 체결했다.

코리아벤처에 가장 적극적인 투자를 하는 곳은 대만의 중화개발공업은행
(CDIB)으로 지난해 8월 한국자본과 합작으로 CDIB&MBS란 창투사를 설립했다.

이 벤처캐피털은 우영 등 12개 벤처기업에 93억원을 투자했다.

투자규모를 늘리기 위해 이달 중순엔 증자를 했다.

CDIB는 이와 별도로 네비콤 등 10개사에 5천1백40만달러를 투자했다.

이처럼 화교자본이 코리아벤처 투자에 적극적이다.

싱가포르의 투자회사인 버텍스는 최근 출범한 코리아벤처펀드(KVF)에
1천만달러를 출자한 데 이어 별도로 코리아벤처 투자를 준비중이다.

인터넷 음반 판매회사인 인터넷뮤직은 최근 말레이시아 소재 화교펀드인
RYLZ사로부터 28억4천만원을 유치했다.

일본계 자본도 유입되기 시작했다.

보광창업투자조합은 이달초 일본 기관투자가들로부터 55억원을 출자받아
벤처펀드를 결성했다.

IMF 관리 체제 이후 일본의 직접 벤처투자 자금이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일본계 벤처캐피털 설립도 추진되고 있다.

삼성증권의 황봉목 부장은 "일본 기관투자가들로부터 코스닥등록 예정
벤처를 추천해달라는 주문이 늘고있다"고 전했다.

황 부장은 "코스닥시장에서도 하나로통신 같은 대형업체에만 입질을 하던
외국인투자자들이 한달전부터는 갓 등록한 벤처기업에까지 매수주문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벤처 투자는 내년에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벤처펀드에 도입되는 유한책임제도가 촉진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출자한 만큼만 책임지는 이 제도가 없던 탓에 국민창투(구 장은창투)는
벤처펀드의 외자유치가 물거품 된 경험을 갖고 있다.

특히 정부가 내년에 조성키로 한 1조원 규모의 공공벤처펀드에도 상당규모의
외자가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헤지펀드까지 벤처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나스닥 활황으로 기업공개(IPO)를 통한 수익률이 헤지펀드 수익률에는
비교할 수 없을만치 높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헤지펀드의 규모가 워낙 큰 탓에 포트폴리오에서 벤처투자 비중은
미미하다.

그러나 대세인 것은 분명하다.

코리아벤처에 헤지펀드의 손길이 닿을 날도 멀지 않은 것이다.

외국자본의 코리아벤처투자는 여러 점에서 이득을 가져다준다.

나스닥 상장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수 있는데다 기업전략에 대한 조언도
구할 수 있다.

물론 신인도를 높이는데도 효과적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한국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고사하면서 외자유치를
추진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디지털보안시스템으로 유명한 성진씨앤씨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미국 수출로 성가를 올린 덕에 현지 금융기관인 M사의 제의로
투자유치를 협의중이다.

지분 10%를 2천만달러에 매각하는 방안이 논의중으로 빠르면 연말께 협상이
타결될 전망이다.

코리아벤처에 대한 외국인투자가 꽃을 피우려면 해결해야할 과제도 적지
않다.

거품벤처는 사라져야 한다.

M&A를 활성화해 코스닥등록외에도 투자회수 길을 넓혀야한다.

코리아벤처로 향하는 외국인들의 발길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벤처산업의
건전성 확보와 시장의 선진화가 과제인 것이다.

< 오광진 기자 kjoh@ked.co.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