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협 개혁과 관련, 그동안 딴 살림을 차리겠다고 유독 고집을 부리던
축협이 지난 주말 느닷없이 백기를 들고 나왔다.

통합해서 만드는 중앙회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다만 통합중앙회의 명칭(농업인협동조합중앙회)을 "농축산업 협동조합
중앙회"로 해달라는 것 뿐이다.

"축"이라는 글자 한자만 넣어 달라는 요구다.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통합중앙회에서 빠지겠다며 신문에 광고까지 내며 대들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자세이기 때문이다.

더욱 미묘한 대목은 축협의 항복과 거의 동시에 검찰 쪽에서 축협회장에
대한 예금계좌 추적 소문이 흘러 나왔다는 사실이다.

인사청탁 등과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다른 임직원들도 수사대상에 올랐다고 한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필연적"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언뜻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개혁 거부"에 대해 "사정"으로 조인다는 연상이다.

"한국식 개혁 수순"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한 장면이었다.

농협이 그랬고 임협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면 수사당국이 대규모의 부조리를 적발하고 당사자
가 항복하고 나서는 수순이다.

실제로 두달사이에 무려 2백87명이나 구속됐다.

전임 회장이 구속된지 한달여 만에 안돼 새 회장까지 수사대상에 올랐으니
축협이 버틸 재간이 없어지는건 당연하달 수 밖에 없다.

뇌물을 받았다면 그가 누구이건 처벌을 받는게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이 "개혁의 절차"로 자리잡는 것은 "개혁돼야할" 관행임에
틀림없다.

부조리가 있다면 진작에 잡아들였어야 하고 개혁은 이해관계자의 협의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협동조합의 경우 다른 조직과는 달리 조합원들이 함께 출자해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특수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선진국들이 협동조합 통합에 오랜 시간과 공을 들인 것도 그래서다.

한국민들에겐 언젠가부터 "개혁은 한순간에 해치워야 한다"는 인식이 몸에
배있다.

질질 끌어서 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교과서로 떠 받드는 "글로벌 스탠다드"엔 개혁도 선진국식으로
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느리지만 오래도록 잘 굴러가게 해야 한다는 구절이다.

"힘"으로 강제 동거시킨 "한 지붕 네 가족"이 오손도손 살림을 꾸려갈 수
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강창동 < 사회1부 기자 cdk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