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가 3일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공기업 경영혁신 요구가 거세던 지난해 4월 석유공사의 키를 잡은 나병선
사장.

삼성 장군 출신답게 거센 개혁바람을 불어 넣고 있다.

그는 "석유공사도 이제는 돈 버는 공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면서
"그렇지 못할 경우 사장은 물론 직원들도 조직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석유관련 업무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며 올해 한국석유개발공사
에서 한국석유공사로 이름도 바꿨다.

그는 요즘 산유국의 희망에 부풀어 있다.

울산 앞바다에서 가스가 쏟아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본사 최필규 산업1부장이 경기도 안양의 석유공사 사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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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이름도 바꿨고...

각오가 새롭겠습니다.

<>나사장=지난 20년은 홀로서기를 준비해온 기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제밥벌이"해서 자립하는 회사로 거듭 태어나도록 경영자원을
분배할 작정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나사장=공공성에 기업성을 추가시키는 작업으로 보면 될 겁니다.

석유 한방울 안 나오는 나라에서 석유수급 안정이라는 공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면 이제는 이윤도 창출해 내야 한다는 거지요.

공기업도 망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근무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자원개발은 물론 비축,공급,서비스,정보 등 모든 부문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킬 겁니다.

-모든 분야에 치중하기는 힘들잖습니까.

우선 순위가 있을 텐데요.

<>나사장=자원개발쪽입니다.

우리는 세계 6대 석유소비국이자 4대 수입국입니다.

석유는 국가안보 산업안보에 직결되지요.

석유문제를 해결 못하면 생존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경영이나 조직도 그렇게 흘러가야 하는데...지난해 조직과
구성원들을 그런 방향으로 바꿔 놨습니다.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경영혁신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어서인가요.

<>나사장=그렇게 봐도 될 겁니다.

지난해 자리를 맡고 보니 주인의식들이 없었어요.

일을 안해도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퇴출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켜야 조직이 제대로 움직일 거로
봤습니다.

정신교육을 통해 석달가량 분위기를 잡으니까 모양새가 잡히더군요.

-직원이나 직제는 얼마나 줄였습니까.

<>나사장=구조조정은 단순히 사람을 줄이는 게 아닙니다.

적정선을 유지해서 조직에 활력을 주는 게 관건이지요.

경영평가위원회에서 인력수준을 토의하고 노조와 협의를 거쳐서 20% 가량
줄였습니다.

당초 정부 목표가 7백62명이었는데 그보다 두사람 적습니다.

정부예산을 쓰는 공기업에서 사람을 줄이고 효율성을 내면 그게 바람직한
거죠.

인건비를 1백90억원 가량 세이브한 걸로 압니다.

-아무래도 사람 "자르는"일이라 힘들었을 텐데요.

<>나사장=그렇진 않았어요.

일방적인 일처리였다면 문제였겠지만...

노조 협의를 거친다는 원칙을 갖고 접근했습니다.

사전에 실시한 정신교육도 도움이 됐고요.

경영방침을 이해하고 따라준 직원들에게 감사할 뿐 입니다.

-퇴직자 처우가 독특했다고 들었습니다.

<>나사장=퇴직이란 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사형선고나 마찬가집니다.

당장 생계위협을 받잖아요.

"산사람"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도와주자고 설득했지요.

퇴직하는 직원에게 플러스 알파로 1천6백만원씩 돌아가더군요.

우리 직원들은 그래서 지난해 11,12월 월급을 절반씩 밖에 못받았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이제 안심해도 되는 겁니까.

<>나사장=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강제 퇴출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경영혁신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다면평가제 같은 제도들을 확대 시행중입니다.

-다면평가제는 다소 생소한데, 어떤 제도입니까.

<>나사장=윗사람이 일방적으로 하던 평가방식을 보완한 겁니다.

하향식 평가외에도 자기가 자신을, 또 부하가 상사를 평가토록 했어요.

시범 실시해봤더니 객관적인 평가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래서 전직급에 확대 시행한거고요.

인사때 이 자료가 80% 가량 반영됩니다.

인사가 잘못돼 조직의 사기가 떨어지는 걸 막자는 게 취지입니다.


-위에서 아랫사람 눈치를 보면 경영이 부실해지지 않겠습니까.

<>나사장=인센티브를 주는 조건이기 때문에 문제가 안됩니다.

가령 시추선을 예로 든다면, 3백65일 조업을 백점으로 잡습니다.

간부가 일을 안시키거나 세일즈를 잘못하면 조업일수가 줄어듭니다.

조업일수를 성과급에 연계시켜 놓았기 때문에 받는 돈도 적어지지요.

이러면 아래에서 오히려 일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부처별로도 등수를 따지는데 일등과 꼴찌는 상여금이 1백%나 차이가
납니다.

위 아래가 어울려 함께 일하게 되는 거지요.

-평가는 자주 합니까.

<>나사장=매년 한번이 원칙입니다.

그렇지만 태스크 포스 조직에 대해선 부여된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수시평가도 합니다.

-비축사업도 돈되는 쪽으로 운영한다는데,이것도 경영효율과 관계있는지요.

<>나사장=물론입니다.

현재 정부가 정한 석유비축 기준은 60일분입니다.

수입해서 정제하는 데 30일씩 걸리니까 이 정도는 있어야 안심이라는
거지요.

실제 비축돼 있는 석유는 26일분입니다.

"놀고 있는" 비축기지가 적지 않습니다.

국제 공동비축사업 계약을 맺어 빈공간에 기름을 보관하고 수수료를
받으면 돈만드는 거 아닙니까.

게다가 비축기지에 보관된 기름은 유사시 활용할 수도 있고요.

국제 석유메이저들과 1천4백만배럴 가량의 대여계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석유정보망 사업도 계획하고 있다면서요.

<>나사장=석유정보는 국민적으로 관심을 모으는 내용입니다.

그동안 외국것을 사서 써왔는데 이렇게 하다가는 안된다는 생각에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3단계 가운데 2단계 까지는 작업이 끝난 상태입니다.

만든 정보로 사업 가능성을 타진해 보니까 의외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사업화하기로 하고 올해초 시연회를 가졌습니다.

빠르면 내년부터 돈되는 사업이 되도록 힘쓰고 있어요.

-울산 앞바다 천연가스전은 어떻게 되갑니까.

<>나사장=대륙붕 6-1광구 고래5구조 얘기 같은데요, 6일부터 경제성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평가시추를 시작합니다.

지난해 여름 시추때 7억-8억달러 규모의 가스매장이 추정되는 층을
발견했는데 이걸 최종 확인하는 작업이지요.

3억-5억달러 어치를 추가로 알아낼 수 있을 거로 봅니다.

-그러면 우리도 산유국이 되는 건가요.

<>나사장=그렇지요.

평가공을 3개 정도 뚫어 보면 8월께 정확한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지금 단계에선 가스 생산을 90% 확신하고 있습니다.

산유국이 된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설레서 밤잠을 못이룰 정돕니다.

-자원개발은 성공률이 낮은 사업인데 정부 지원은...

<>나사장=에특(에너지특별회계)에서 지원받고 있는데 미미한 수준입니다.

에특은 석유수입때 배럴당 1.7달러를 떼서 조성합니다.

지난해 1조8천6백억원 가량 조성됐고요.

이 가운데 석유개발부문에 투자된 돈은 4%밖에 안됩니다.

-대책은 있습니까.

<>나사장=투자를 늘려야지요.

에특의 30% 가량은 자원개발에 쓰여져야 한다고 봅니다.

게다가 요즘은 기름값이 떨어져서 싼값에 나온 유전들이 수두룩 합니다.

재원만 확보된다면 지금이야말로 해외자원개발의 적기입니다.

-IMF사태로 민간부문의 자원개발 열기도 시드는 듯한 인상인데요.

<>나사장=안타깝습니다.

석유개발은 10년 이상 연속성을 갖는 게 보통입니다.

외화가 부족하다고 투자를 그만두면 그동안의 노력은 허사가 되지요.

리스크를 많이 떠안기 힘드니까 공동개발때 참여지분 규모도 적고.

그러니 큰 수익을 못내지요.

일본 종합상사들이 해외자원개발을 발판으로 컸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정유업계에 구조조정 논의가 활발합니다.

<>나사장=바람직하다고 봐요.

동남아 국가들이 국가별로 한개씩인데 우리는 5개나 되니까 파이 자체가
작아요.

그러니 재무구조도 안좋아지고요.

석유수송비를 감안한다면 정유시설을 차라리 산유국에 지었어야 옳다고
봅니다.

-석유쪽이 전공은 아닌 것으로 아는데 무척 빨리 방향을 잡으신듯 하군요.

<>나사장=분에 넘치는 평가입니다.

군생활을 통해 평생 조직을 관리 운용하면서 살아온 덕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위산업체를 다뤄본 경험도 도움이 되고 있고요. (그는 6군단장 국방대학
원장을 거쳐 지난 89년 예편, 방위산업진흥회 상근후부회장을 지냈다)

-정치권에도 몸담고 계시지요.

어떤 계기로.

<>나사장=90년초 김대중 대통령께 안보문제 자문을 해드린 게 계기가
됐습니다.

전국구로 14대 국회에 진출해 활동을 했고요.

지금은 새정치 국민회의 성동갑 지구당 위원장직도 맡고 있습니다.

-지구당을 맡고 계시니까 내년 총선 출마여부가 궁금해집니다.

<>나사장=지금까지 국익을 위해 일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출마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익에 비춰 출마가 나은지, 석유공사 사장으로 있는 게 좋은지 아마
당에서 검토한 뒤 결정을 내릴 겁니다.

거기에 따라야지요.

< 정리=박기호 기자 khpar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