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시대에 소설은 "밥"이 될 수 있는가.

한국문단을 이끄는 대표적 전업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주영 김원일 윤후명 이경자 박영한 박상우 은희경씨 등 소설가 30여명은
2월24~26일 강원도 양양 낙산비치호텔에서 문단사상 처음으로 "전업작가
문학 세미나"를 열고 작가의 생계와 위상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전업작가란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소설쓰기에만 전념하는 문인.

원고료와 인세만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에게 경제위기의 한파는
더욱 매몰차다.

그래서인지 이번 모임에는 한국 소설문단의 "등뼈"를 이루는 대표 주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중견들은 물론 최인석 구효서 박상우 이순원 김하기 이남희 심상대 유정룡
방현석 은희경 권현숙 정길연 강규 김미진 하성란 한강 고은주씨 등 20~30대
까지 함께 했다.

모임은 지난 연말 맏형 격인 김주영씨와 후배 작가 박상우 구효서 은희경씨
가 만난 자리에서 발의됐다.

"바닷가에서 술이나 왕창 퍼마시며 서로에게 힘이 돼보자"며 김씨가 주머니
를 털어 기초경비를 마련하자 이 소식을 들은 삼성문화재단이 지원해
이뤄졌다.

첫날 세미나에서 가장 심각하게 논의된건 작가의 생존권 문제였다.

김원일씨는 "장당 5천~6천원인 원고료에 목을 매고 말못할 어려움을 겪는
후배 동료들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며 "외국처럼 공공도서관이 순수
창작집을 한권씩만 구입해도 생계걱정 없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남희씨는 "지난해 작가 권도옥 씨가 자살한 것도 생계곤란이 큰 원인
이었다"면서 "문인기금 신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고료와 원작료 현실화, 도서대여점에 대한 저작권료 문제, 문에진흥기금
의 파행적 운영, 문학단체들의 직무유기, 평론가와 언론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이와 함께 작가의 사회적 위상 문제가 화두로 등장했다.

은희경씨가 "모든 것을 혼자해야 하는 작가로서는 부당한 대우나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하자 화가이기도 한 김미진씨는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애니메이션 기초학문 등에서도 순수문화를 우대하는 시회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흥행처럼 상업주의에 쫓기는 문학현실이 한스럽다"는 구효서씨의
한탄과 함께 이경자씨는 "고료나 원작료 책정때 작가 개개인이 곧 문단
이라는 생각으로 최소한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하기씨는 "지방 작가들의 어려움은 더하다"고 털어놨으며 소설 "지상의
방 한칸"에서 전업작가의 굴곡진 삶을 그렸던 박영한씨는 "작가들의 고통이
이미 체화돼 이런 논의가 둔감해질 정도"라고 말했다.

34세에 전업작가가 된 윤후명씨는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자리를 매년
정례화해서 우리 입장을 알리자"고 제안했다.

참석자들은 이에 적극 동의, 가칭 "한국 전업소설가 모임"을 만들기로 하고,
3월말~4월초 서울에서 회합을 갖기로 했다.

모임의 열기는 밤새도록 이어진 술자리에서도 식을 줄 몰랐다.

오죽했으면 "작가 노조를 결성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다.

늦게 합류한 이순원씨는 "문인지원제도가 투명하지 못하면 수령거부 등을
통해 강력 대응하자"고 말했다.

2박3일간의 "생존 여행"을 끝낸 작가들은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뒷풀이
자리에 모여 못다한 심중의 애환을 풀어놨다.

밤이 깊도록 포장마차에 둘러 앉아 전업작가의 곤궁함과 한국문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도시의 휘황한 불빛 사이로 애잔하게 퍼졌다.

< 양양=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