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 코든 < 존스 홉킨스대학 정주영 석좌교수 >

아시아 위기의 돌파구는 없는가.

간단하지 않은 질문이다.

한두가지로 해결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지혜로운 접근 방도는 찾을 수 있다.

위기극복의 대안으로는 크게 두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일반투자자들의 투자심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정책을 첫째 대안으로
꼽을 수 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자신있게 빌려줄 수 있고 또 빌리려는 사람도 쉽게
빌릴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두번째 대안은 적자재정이 불가피하더라도 케인스식(Keynesian) 재정지출
확대정책을 펴 기업들의 위축된 투자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는 슬기롭게도 이미 이 두가지를 병행해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가지 돌파구를 모색하는 데는 몇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그것을 나열해 보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위기가 엄습한 97년 이래 한국의 대통령은 "위기는 극복될 수 있다"며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 왔다.

시장의 투자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첫번째 대안인 "심리전(psychological
warfare)"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정부가 내세우는 외환보유고 증가, 금리 하락, 환율 안정,
경상수지흑자 증가 등의 지표를 가지고 너무 낙관하지 말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국경제가 최근 보여주고 있는 거시경제 지표는 외자도입 증가와 부도
감소, 수입 감소 등 일시적인 변화에 따른 것이며 오히려 실물경제의 어두운
면을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그런 일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지나치게 왜곡하지 않는한 지도자들
이 일반투자자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은 해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재정지출 확대(fiscal expansion)와 관련한 여러가지 다른 견해들을
어떻게 조정하고 집약해 보다 효율적인 실천안을 만들어 내느냐 하는 점이다.

재정지출 확대는 시장경제체제가 기본적으로 강조하는 "작은정부(small
government)"라는 개념과 배치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그러나 경기순환의 흐름을 보다 안정적으로 유도해 보려는 노력
(counter-cyclical)까지 작은정부라는 개념과 상치되는 범주에 집어넣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오케스트라를 예로 들 수 있다.

각 악기의 자유로운 음색은 보장돼야 하지만 이를 아름다운 화음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종합적 신호(aggregate signal)"는 있어야 한다.

지휘자의 필요성이다.

경제에서도 경제주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되 이를 조정할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

경기침체기에 민간의 투자를 유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간접자본 전자제품 자동차제조 등 자본을 투입하고 상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기까지 상당한 자본회임기간이 필요한 산업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결국 총수요가 위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수요창출을 위해
나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인식속엔 "재정지출 확대=재정적자 확대"라는 등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너무 의식하는 것은 민간의 수요위축을 보전하는 방법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민간의 투자위축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1930년대의 공황은 이같이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일거에 몰려
일어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아시아국가들에 자금지원 조건으로
재정긴축을 강요한 것은 매우 잘못된 정책이었다.

특히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멕시코나 남미제국들과는 달리 매우
건전한 재정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물론 IMF도 그같은 처방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정하기는 했다.

하지만 모든 경제정책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는 시각에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처방을 수정한 시점이 연쇄부도와 대량실업이 본격 진행된 이후였기에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재정지출 확대에 문제가 전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우선 재정지출 확대는 시장의 기대치를 왜곡시킬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채권발행을 통한 재정적자 보충이 가능하지 않는 한 적자는
통화정책(monetization)으로 풀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는 통화가치의 하락을 의미하고 이같은 기대는 외국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상환연장이나 신규자금 제공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심한 경우엔 자금을 빼가도록(capital flight) 자극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재정지출 확대는 길어야 3년안에 끝날 수 있는 프로젝트로 대상을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재정지출 확대는 일시적(temporary) 처방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다시 원기를 회복하고 또 수출이 잘돼 위축된 수요가 살아난다는
판단이 서면 그때부터는 재정지출 확대를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가 영구적으로(permanent)
진행될 것처럼 기대할 수 있다.

지출확대를 중단해야 할 시점에 이르러서도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그만두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않았다는 전례를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일몰조항(sunset clauses)"
을 삽입해 놓는 것이 바람직할 때가 많다.

재정지출 확대는 민간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여러 사람에 의해 제기되는 의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정지출 확대로 총수요가 유지된다면 민간의 2차적 투자위축
(secondary decline of private investment)은 막아지는 것이다.

또 대규모 재정확대는 지출상의 오류(misspending)와 부패(corruption)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각국의 상황에 따라 그 성격과 중요도가 다를 수 있다.

또 이런 비경제적 변수가 더 중요시돼서는 곤란하다.

한국이 97년말 위기를 맞은 이후 1년이상이 흘렀다.

그 과정을 돌이켜 보면 IMF가 좀더 빨리 나섰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경우
단기자금을 제공한 은행들에 지불할 상환자금만 적기에 공급했더라면 금융
위기가 더 확산(contagion)되는 현상을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른바 국제금융시장에서의 감염확산을 막는 것이 IMF의 가장 중요한
기능중의 하나라는 의미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과 일본은 대규모 재정확충을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활황등 투자심리도 안정을 되찾고 있는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물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막의 신기루 같은 환상만 키워
놓는 것은 더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일부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장된 포장"은 때때로 "공짜 점심"을 챙기려는 사람들에게 각축장을
제공하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외부로 나가려는 단기자금은 자유롭게
허용하면서 단기자금이 홍수처럼 일시에 몰려 들어오는 것을 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