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접어든 이후 수많은 외래경제용어들이
들어왔다.

낯설게만 느껴지던 이 단어들은 IMF체제가 1년 이상 지속되는 사이 어느덧
일상적인 용어로 쓰이게 됐다.

지난해 11월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전 국제금융시장에는 "한국정부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것같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모라토리엄(Moratorium)이란 한 국가가 대외채무에 대한 지불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것을 말한다.

한 국가의 외환이 바닥나고 외자를 차입할 수도 없게 돼 대외채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취하는 조치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국가는 외채상환을 일시적으로 유예받는 대신 국제
금융시장에서 "신용불량국"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모라토리엄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은 가용외환보유액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동원했다.

한 나라의 통화당국이 대외지급준비를 위해 갖고 있는 외화자산을 외환
보유액이라고 한다.

정부(외국환평형기금) 및 한국은행이 갖고 있는 보유외환(외국통화 해외
예치금 외화증권)과 해외 및 국내 보유금 등으로 구성된다.

가용외환보유액은 말 그대로 필요할 때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외환이
얼마나 되는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가용외환보유액을 계산할 때는 국내금융기관 해외점포에 예치된 외화자산은
뺀다.

해외점포에서 자금을 대출 등으로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현금으로
가져오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가용외환보유액은 작년 12월 39억달러에 불과했다.

올 11월말엔 4백64억달러로 늘어났다.

가용외환보유액에 대비되는 용어가 대외지불부담이다.

한 국가 내의 경제주체가 다른 나라에 다시 갚아야 할 돈의 총액을 말하는
것으로 총외채라고도 부른다.

정부는 물론 기업이 외국에서 빌려온 돈과 금융기관 국내외 지점의 해외
차입금을 모두 포함한다.

또 외국은행의 국내지점이 해외 본점에서 빌려온 돈도 포함된다.

우리나라의 대외지불부담은 지난 9월말 현재 1천5백35억달러 가량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뒤 외환위기가 진정 기미를 보이자 외국환
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에 나섰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이란 원화가치를 안정시키고 투기적 외환의 유출입에
따른 악영향을 막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다.

원화표시와 외화표시 두가지가 있다.

지난 4월 정부는 외화표시 채권을 40억달러어치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외평채 금리는 국가신용도 등에 따라 수시로 변동하는데 발행 당시 외평채
금리는 미국재무부 채권금리보다 3.450%~3.550%포인트가 높았다.

IMF체제에서 금융기관들은 퇴출 합병 감원 등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했다.

부실은행으로 낙인찍혀 문을 닫지 않으려면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이 높아야 했다.

8% 이상이면 우량은행, 이하면 부실은행이라는 등식이 통하는 상황이었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금융기관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국제결제은행이 만들었다고 해서 줄여서 BIS비율이라고도 부른다.

자기자본(자본금+이익잉여금+자본잉여금)을 위험가중자산(전체 대출+투자)
으로 나눠 계산한다.

금융기관의 자기자본액이 위험자산의 일정 범위내에서 유지되도록 함으로써
재무건전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국제결제은행은 회원국 금융기관들이 8%이상을 유지토록 권고하고 있다.

기업들도 구조조정이라는 회오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내로라 하던 기업들이 퇴출되거나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됐다.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던 현대전자 LG반도체 대우전자 삼성자동차 등이
이른바 빅딜 대상으로 떠올랐다.

워크아웃이란 원래 "재활훈련"을 뜻하는 말이다.

경제용어로 쓸 때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기업과 금융기관이 서로
협의해 진행하는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과 그 결과를 지칭한다.

우리말로는 "거래기업 구조조정"으로 번역된다.

경영애로를 겪는 기업을 파산시키지 않고 사적인 협의를 통해 회생시키려
할 때 활용된다.

부채가 많은 기업에 대해 금융기관이 부채의 만기를 연장해 주거나 부채를
출자로 전환해 주는 것 등이 대표적인 내용이다.

이밖에 모럴해저드(moral hazard.도덕적해이), P&A(purchase & assumptions.
자산부채이전), 배드뱅크(bad bank), 정크본드(junk bond), 헤지펀드(hedge
fund) 등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외래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모럴해저드는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대해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지난해 말 정부가 금융기관의 원리금 전액을 보호해 주겠다고
발표하자 많은 예금자들이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부실금융기관에 몰려 다닌
적이 있는데 이 때부터 이 용어가 자주 사용됐다.

P&A는 우량금융기관이 부실금융기관의 불량채권은 제외하고 우량채권.자산
만을 인수하는 것을 말한다.

인수자측이 고용을 승계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점 등에서 인수합병(M&A)과는
다르다.

정크본드는 신용등급이 낮아 투자 부적격 등급인 채권을 말한다.

정크는 우리말로 "쓰레기"라는 뜻이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 S&P 등은 아직도 한국정부의 외화표시채권을
정크본드로 평가하고 있다.

< 김인식 기자 sskis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