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APEC 정상회의에 아시아적 가치를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지도자들이 참석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김대중 대통령과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가 눈에 띈다.

세계각국의 지도자들이 모인 정상회의 자리여서 일부러 논란을 일으키지는
않겠지만 비공식 석상에서 한두마디라도 나오면 상당한 흥미를 끌수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정의와 평가만큼 논란을 빚는 소재도 드물다.

아시아적 가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학자들은 정실주의와 이중규범,
부정부패, 권위주의 등이 아시아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외환위기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그 반론자들은 아시아 위기의 원인을 경제적인 이유에서 찾는다.

외환상황이 좋지않은 시점에 국제투기꾼들이 들이닥쳐 주가와 환율을 들먹여
놓은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아시아적 가치는 오히려 그동안 기적을 일으킨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런가하면 아시아적 가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그런 관습은 세계
어디에도 있다는 이들이 많다.

아시아적 가치중에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순기능은 오히려 본받아야 한다고
중도론을 펴는 학자도 있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비판론자의 견해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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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아시아적 가치"라는 단어 뒤에는 명확함을 거부하는 자욱한 안개,
끼리끼리 자본주의, 이중 규범, 부패 등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가치체계가 변하지 않고 아시아 경제가 회복한다면 또다시 재앙을
맞을 것이다" 리처드 홀부르크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차관보는
최근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투자 컨퍼런스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잇따라 경제위기 상황을 맞은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문제의 아시아적 가치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비난하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의 첫번째 타깃은 정부의 권한 독점이다.

그는 "이 지역 정부들이 지나치게 민간의 영역을 침해, 규제를 양산함으로써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추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역할은 "경제주체들의 경쟁력 분위기 조성"에 그쳐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인도네시아 하비비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에 대해 "경제주체
들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있는 정부의 이중규범이 개선되지 않는한
절대로 성공할수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홀부르크 전 차관보는 아시아 기업들의 인사관리 행태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중시하는 기업 풍조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아시아가 성장의 틀을 다시 짜야할 때"라고 충고한다.

정부의 통제보다는 시장의 자율성을 확장하고, 가부장적 위계질서 보다는
개인의 창의력을 보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아시아에서 나타나는 관치금융 행태에서 벗어나 금융산업의 경쟁을
촉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