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야니"가 남부지역을 강타하여 50명이 넘는 인명피해를 낸 스산한
오후.

대학로 찻집으로 동료작가를 만나러 간다.

대학로는 언제나 싱그럽다.

젊은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한껏 멋을 낸 카페들과 좌판에 조르르 놓인 모조 액세서리며 흰 구름둥치
같은 솜사탕과 꽃을 파는 거리.

시간이 남아 샘터 책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책방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남자도 여자도 나이에 상관없이 다 같은 느낌을 주는 곳.

신간 번역 소설 한 권을 사들고 약속장소로 가면서 설핏 회상에 잠긴다.

3년 전, 얼마동안 파리에 머문 적이 있다.

소르본느 대학이 있는 생미첼 거리,파리의 대학로에 자주 갔다.

그 거리는 세계각국에서 온 유학생들의 다양한 얼굴 색깔이 이국적인
것만치 크고 작은 서점들이 다양하고 즐비하여 매우 학구적인 분위기였다.

우리도 대학로에 마로니에 공원이 있기는 하지만 생미첼 거리 부근에 있는
룩생부르 공원의 인공 호수와 잘 가꿔진 숲과 꽃밭과 대리석 조각상들의
예술적인 분위기가 아쉽다.

더욱 아쉬운 건, 카페와 음식점만 즐비할 뿐 젊은이들이 우글거리는
대학로에 책방과 도서관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운동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사색적이기 보다는 역동적인 요즘 학생들은 책 대신 영상문화를
선호한다.

이런 시류를 타고 영영 활자시대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단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작가들 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갈색 커피향에 풀풀 담배연기를 날리며 작가들은 열을 올린다.

근년에 폭우와 태풍으로 엄청난 수해를 입은 건, 흡사 벌을 받은 기분이라는
것이다.

원고료가후한 사보가 줄고 청탁이 줄어 숨 막히는 판에 출판사의 80%가
도산할 위기라는 충격적인 얘기도 들린다.

연일 사정이니 수억원의 뇌물사건이니 하고 국민들의 심정을 어지럽히는
정치인들은 알기나 하는가.

추석 대목을 고대하던 시장 상인들의 울상과 고향가는 길이 아득하기만
한 실직 가장들의 우울한 얼굴을 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