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실 때 다도가 있듯이 포도주를 마실 때 주도가 있다.

다도는 동양의 문화며, 포도주의 주도는 유럽의 문화로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동양인들은 차를 일상생활의 고급식수와 건강음료로 인식하고 있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어머니의 병환을 치유하는 약으로 차를 구하려고 강
언덕에 앉아 차를 싣고 올라오는 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불교의 사찰에서 스님들이 차도를 하나의 정신수련의 방편으로
삼으면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인들은 오래전부터 포도주가 살아있는 식수로서 건강을 회복시켜주는
활성기능을 지녔다고 알고 있다.

"당신이 포도주를 마시는 시간은 당신의 몸 속에 건강이 깃들고 있는 시간
이다"

포도주가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시사하는 잠언이 적지않다.

중세부터 카톨릭 승려들이 수도원에서 포도주를 빚어 마시는 전통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카톨릭에서 포도주를 미사주로 사용하고 있다.

동양의 차와 서양의 포도주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은은한 감성을 느끼게
하는 음료이다.

이처럼 동양의 차와 서양의 포도주는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흐트러지기 쉬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조율해주는 기능을 가지면서 그 오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동서양이 세계화와 더불어 더욱 가까이 다가가면서 서구인들이 차를
일상생활의 음료로 애호하는 경향을 보이듯이 최근에 한국인들도 포도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와같은 현상은 서로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하나의 길이 된다.

차와 포도즈는 건강식품으로 평가받는 고급스러운 문화전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차도를 민족의 문화로 계승발전시키는 동시에 포도주를 서구
문화의 운치로 받아들이 가치가 충분이 있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이 저급한 사고난 행동을 하지 않듯이 포도주의 주도를
아는 사람들 역시 저속한 사고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유럽의 문화사는 초도주가 익어가면서 발전한 역사라고 한 말도 있다.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라는 상호 모순적인 논리도 우리가 차도와 포도주의
주도를 함께 음미하는 동안 극복할 수 있는 대상들이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한국에 포도주를 수출해 적지않은 돈을 번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폴투갈 등 여러 나라에서 포도주를 세계시장에 수출해
그들의 국민경제에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도 포도주 수출의
경제전략을 세울만 하다.

우리나라가 차와 포도를 잘 재배할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차농사와 포도농사가 여러가지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많은 국토를 차 경작과 포도 경작으로 일구어 나간다면 아름답고
낭만적인 경치를 이루어 낼 수 있다.

차를 샐산하고 포도주를 생산하면 이는 환경친화적인 산업으로서 공해를
유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차와 다도를 수출햐면서 동양문화로서의 민족
문화를 수출할 수 있고, 포도주를 수출하면서 서양문화를 역수출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20세기는 물질문명이 세계사를 세하게 이끌어나갔다면 21세기는 문명과
문화가 같은 비중으로 세계사를 형성해 나갈 것이라는 미래전망이 가능하다.

차와 포도주는 물질과 문화가 함께 어울어진 산물이다.

한국이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추구해온 산업화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주었지만 동세에 많은 것을 앗아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절실히
인식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경제한파로 그간 이루어 놓은 것을 지키지도 못하고 자연만
크게 훼손해 오염된 공기와 물을 마시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큰 미래를 전망하지 못한채 정책을 수행한 결과 얻어진
폐해에 대해 생각있는 사람들은 샘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경제와 산업의 구조조정을 할 때 깊이 고려해야 할 점은 공해
산업을 하나씩 줄여나가면서 환경친화적 경제환경으로 바꾸어 나가는 국책이
필요하다.

어느 원시 신앙인들이 짐을 지고 가다 하염없이 쉬고 있었다.

오랫동안 휴식을 취해 힘이 회복되었는데도 계속 쉬고 있는 이 무리의
사람들에게 문명권에서 간 어는 관광객이 말을 붙이며 묻기를 "해가 저물어
가는데 왜 서둘지 않고 그렇게 앉아만 있느냐"고 했더니 "내 몸은 여기까지
올라와 있지만 내 영혼은 아직도 미쳐 따라오지 못하고 저 계곡 아래 머물고
있기 때문에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영혼이 따라와서 내 몸에 다시
찾아들어가야 길을 떠날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한다.

우리가 물질문명만 발달시켰다가 전신문화를 함께 돌보지 못하여 지금은
물질문명마져도 허물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일그러진 영혼을 회복하고 올바른 의식의 인프라를
새로 구축하는 정신문화의 구조조정을 경제의 구조조정과 함께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원시신앙인의 생각을 우리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