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5대그룹의 사업구조조정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고민거리는 크게 두가지.구조조정으로인해 업종에선 독과점이 심해질 수
밖에 없고 카르텔 형성도 우려된다는 것.

또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 세계시장의 경쟁제한을 촉발한다는 이유로 통상
시비를 걸어올 소지도 있다.

그렇다고해서 공정위가 개혁차원에서 이뤄지는 기업구조조정에 제동을
걸 수도 없는 난처한 입장이다.

내부에선 기업정책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뒷치닥거리만 맡게 됐다는 불만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 독과점 심화우려 =지난 9일 3차 정.재계간담회에서 정부는 철도차량
1개 업종만 국내공급독점에 따른 경쟁제한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나머지는 괜찮다는 것이다.

또 공정거래법 적용과 관련해 "원칙을 지키는 범위내에서 재계의 요청사항
을 가급적 존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가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정부의
평가"라며 "반도체 선박용엔진 발전설비 석유화학업종에서도 독과점 폐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신광식 한국개발연구원 박사는 "재계안이 업종별로 독과점을 심화할 우려가
있다"며 "공정위가 엄격히 법적용을 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카르텔 허용여부 =공정위는 철도차량 선박용엔진 발전설비 등 업종에서
일시적인 카르텔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사업부문을 떼내 단일법인을 설립하기까지 서로간 경쟁을
배제하고 입찰담합이나 가격담합 등의 행위를 할 것이란 얘기다.

실제로 5대그룹은 "공동 담합 행위를 한시적으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대해 이남기 공정위 부위원장은 "경기순환적인 불황에 따른 카르텔은
예외인정할 수 있도록 법에 규정돼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며
"과잉중복투자를 정비하는 차원에서 벌어지는 공동행위를 인정하기 힘들다"
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 외국의 통상시비 가능성 =미국이나 유럽연합(EU) 일본의 움직임도
문제다.

EU의 독점금지법은 2개 기업 통합으로 연간 매출액이 27억달러, 미국은
1억달러를 초과할 경우 자국에 사전신고토록 하고 있다.

지난 97년 미국의 보잉사와 맥도널더글러스사의 합병건이 실례다.

당시 EU는 보잉의 합병은 세계 항공기 시장의 경쟁을 제한한다고 이의제기
를 제기했다.

결국 보잉사가 델타 등 미국 3대 항공사와 맺은 20년간 독점공급계약을
파기하는 조건으로 합병이 이뤄졌다.

이같은 국제룰이 반도체같은 업종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합치면 반도체 세계시장점유율이 2위가 된다.

이미 미국 법무성 독점금지국이나 연방거래위원회(FTC) 등은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국의 독점기업 탄생으로 자국의 경쟁업체가 피해를 볼 것인지에
대해 조사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은행(IBRD) 역시 구조조정 차관제공과 관련해 경쟁제한적 M&A를
엄격히 규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내에서 허용한다해도 외국경쟁당국이 금지를 요청할 수
있어 자칫 통상마찰도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 김준현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