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세금리가 하락행진을 계속해서 콜금리가 한자릿수로 내려앉고
회사채유통수익률이 연11~12%대로 떨어지고 있다.

그동안 외환위기극복 처방으로 추진돼 왔던 고금리체제의 엄청난 부담을
생각할때 다행한 일이 아닐수 없다.

더욱 주목할만한 것은 금리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화가치가 강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외환시장의 안정기조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원화가치 안정을 위해서 고금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해온 국제통화기금
(IMF)의 처방과 전통적 경제이론에 상치되는 현상이다.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제국의 특성을 감안하면 금리하락이 외화자금
유입이나 외환시장에 악영향을 주지않을 것이라고 전망해온 스티글리츠
세계은행부총재를 포함한 영향력있는 일부 경제학자들의 견해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의 금융및 외환시장 안정이 우리경제전반에 걸친 낙관론으로
연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원화가치 절상추세는 외화자금의 단기적 수급불균형에 따른 이상기류에서
그 큰원인을 찾을수 있고 거시경제적 펀더멘털(fundamental)을 반영하는
것으로는 볼수 없다.

실제로는 실물경제 침체가 가속되고 있다.

올 상반기중 산업활동은 내수부진과 설비투자의 급감으로 전후 최악의
상황을 보였다.

경기선행지표도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하고 있어 경기회복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급한 원화절상은 수출경쟁력을 잠식하면서 경상수지흑자
기조에 찬물을 끼얹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더군다나 일본경제 침체가 장기화 될 전망이어서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중국의 위안화 절하시기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나 브라질과 같은 주요개도국은 물론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도
아시아 위기의 충격을 점점 실감나게 느끼고 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열악한 국내외적 경제여건아래서 우리경제 소생을 위한 정책적
초점을 어디에 맞추어야 하느냐가 관건이다.

우선 정부주도하에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구조조정작업을 조속하게
일단락짓는게 중요하다.

경기침체상황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구조조정은 자금경색과 기업활동
침체, 그리고 실업증가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구조조정, 특히 부실금융기관
정리가 일단 마무리돼 경제흐름이 조기에 정상화돼야 한다.

경제활동에 있어서 최대의 적은 위험부담(risk)과 불확실성(uncertainty)
이다.

구조조정에 따른 여파가 진정되었다는 확신이 없는한 경제활성화를 가로막는
부정적요인들을 제거할 수 없다.

아울러 재정확대와 능동적이 통화정책의 실천이 필요하다.

어떤 경제정책도구도 긍정적인 효과만 가질수는 없다.

결국 득실(trade-off)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일이고 보면 결국 우선순위
(priority)의 문제다.

국민적부담을 고려하면 적자재정은 능사가 아니다.

인플레 유발효과를 생각하면 통화증발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경기침체 심화가 산업기반의 붕괴와 실업 양산을 재촉하고 있는
어려운 경제적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인플레요인이 그리 심각하지 않은 현시점에서 확대정책은 실보다는 득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

통화량증가에 따른 인플레영향을 "미열"이라고 한다면 경제기반 붕괴는
생명을 앗아갈수 있는 과도한 "출혈"에 견줄만하다.

이와함께 능동적인 외자정책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가용외환보유고가 4백억달러에 달하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국내 외환보유고가 우리나라의 단기외채총액을 초과하게 됐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는 국제금융시장에서의 대외신인도 회복에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외환보유고 유지는 적지않은 비용을 수반한다.

외환보유고 증가가 모두 경상수지흑자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현시점에서는 약2% 정도의 역마진을 감수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향후 외자유치의 초점은 비부채성 직접투자(소위 FDI)에 맞춰져야
한다.

FDI자금은 자본시장을 교란시킬 가능성이 있는 단기성 핫머니에 비해
국내기업의 구조조정에도 촉매적 역할을 할 것이다.

전광우 <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국제금융팀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