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위기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다.

기업과 금융기관은 이미 부실의 정도가 깊으며 이것이 아직까지 충분히
가시화 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난 약 두세 달 간 진행되어 온 급격한 환율과 금리상승은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풀어 나가야 할 과제의 깊이를 더해 놓았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경제전체의 부실과 처리해 나가야할 손실규모는
커질 것이다.

외채협상 이후 많은 국민들은 이제 우리가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는 듯한
낙관적인 기대에 젖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진정한 어려움은 이제 막 시작단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충격과 더불어 마음만 움추려 들었지 아직까지
기업의 대량부도나 실업, 그리고 실직소득의 감소를 겪지는 않았다.

또한 기업들도 이제 막 구조조정의 계획을 내고 전전긍긍하며 여기저기
눈치만 살피고 있었지 실제로 구체적인 실행은 별로 없었다.

아마도 이 몇달 간의 어려운 고비만 넘기면 다시 종전과 같은 시장분위기로
돌아서리라고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부실의 규모나 정리해 나가야 할
문제의 크기를 가늠해 볼 때 우리나라의 경제회복과정은 이제 막 어둡고 긴
터널로 진입해 들어가는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이 언제 보이게 될지 모른다.

외국전문가들도 실제 우리기업들이나 금융기관의 숨겨진 부실의 정도를
보고 또 그동안 진행되어 온 방만한 경영과 허술한 감독체계를 보고는 그저
입을 벌릴 뿐이다.

우리 정부나 기업, 국민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직시하고 정면으로 대응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대로 적당히 버티면 다시 경기가 좋아지고 그러다 보면 부실의 규모도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또 전과 같이 돌아가게 되겠지 하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전에는 그렇게 되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잘 될 것 같지 않다.

우리 경제에 지금 주어진 숙제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이제까지의 누적되어온 부실을 정리하는 것, 둘째는 앞으로 그러한
부실이 다시 재연되지 않도록 시장질서와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다.

이것이 말은 쉽지만 보통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바로 새로운 경제의 질서와 틀을 짜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지금 우리 경제에 닥친 과제는 90년대 초 동구라파
국가들이 당면한 문제들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시장 자본주의를 해왔다고 하지만 우리 경제도 그동안 그들처럼
생산극대화, 수출극대화 등 외형극대화에 치중해 왔다.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인 수익극대화를 우리 기업들은 추구하지
않았고 지금 우리는 그 결과를 보고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 정부, 근로자, 일반가계 할 것 없이 앞으로 결코 만만치
않은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하고 커다란 구조조정 과정을 치루어 나갈 각오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엄청난 과제에 비추어 볼때 이 문제들을 풀어
나가기 위한 우리의 준비태세는 충분한가?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새로운 정부조직으로 개편하여 출범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정부조직 개편의 결과를 놓고보면 과연 우리 정부가 이러한
어려운 과제를 풀어 나갈 수 있는 조직을 갖추었는지 의문이 없지 않다.

현재 결과로 나타난 정부조직 개편을 보면 태평성대에는 좋은 조직구도일지
모르나 지금과 같은 경제비상시국에는 결코 적합하지 않은 조직으로 보인다.

지금은 강력한 경제개혁과 구조조정을 해나가야 할 때인데 우리에게
당장 시급한 금융.기업 등의 부실정리를 어디에서 확실한 권한과 책임을
지고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구도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왕에 국회를 통과하고 약 일주일도 남지 않아 출발하게 될
새 정부조직에 대해 비판만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기왕에 이렇게 된 바에는 새 조직하에서 강력하게 경제개혁과 부실정리
등을 처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갈 수밖에 없다.

가령 예를들어 "부실정리 특별 대책단"과 같은 한시적인 조직을 만들어
부실금융및 기업정리에 관해 여러군데 흩어져 있는 기능.즉 금융감독
예금보험 국고 예산 통화 등 금융부문 부실정리와 관련된 기능을 한시적으로
여기에서 일관된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조직은 단순히 일주일에 한두번 만나는 의원회가 아닌 해당
정부 부처의 고위 간부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이 일만을 위해 풀 타임
(full-time)으로 매달려 근무하는 조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새로이 개편된 정부조직을 가지고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