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서울외환시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외환당국의 개입선이 그날의
환율종가를 결정하고 있다.

미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환율이 통상적인 매매공방없이 시장이 열리자마자
일방적으로 오르기 시작, 외환당국의 방어선이 형성될 때까지 상승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시장의 자율적인 가격조정기능이 약해지고 환율상승이 심리적인
차원을 떠나 구조화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난주 개장가격에서 달러당 5원씩 후퇴해왔던 외환당국의 방어선은 10일
달러당 19원씩이나 밀린 뒤에야 형성됐다.

이날 첫거래가 매매기준율인 9백79원40전보다 5원60전높은 9백85원에
이뤄졌음에도 불구, 외환당국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환율은
일사천리로 1천원수준까지 올라가버렸다.

당국이 이날 "5원간격의 방어선"을 포기한 것은 외환딜러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준 것 같다.

그동안 심리적으로 절대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져왔던 달러당 1천원선(대고객
현찰매도율 기준)이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딜러들은 당국이 하루에 달러당 20원가량을 "양보"한 만큼 앞으로 시장의
환율상승 기대심리는 더욱 높아지고 그에 따라 미달러화에 대한 원화의
절하폭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양상은 무엇보다 외환시장에 달러공급요인이 부족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달러수요는 종전과 변함이 없고 오히려 환율상승심리의 가세로 가수요현상
까지 나타나고 있는 판국에 공급물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또 올해 경상수지가 1백억달러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및
금융기관의 해외차입여건은 점입가경식으로 악화되고 있다.

하반기로 갈수록 무역수지가 호전된다고는 하지만 그또한 미미한 수준이고
수입초과에 따른 미달러화 수요를 해소할 길이 막막한 형편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달이후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의 순매도물량이 1조원을
넘어서 벌써 10억달러이상이 빠져나갔다.

급격한 해외신용도 추락으로 인해 종금사들은 전혀 해외차입에 나서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은행들도 하루짜리 단기차입에 애를 먹고 있다.

10여개이상의 종금사들이 외화부도위기에 몰려있다는 소문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은행과 종금사들은 당일 도래하는 결제자금 20~30억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아무리 높은 환율일지라도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야할 판이다.

이에 반해 수출업체들은 향후 환율상승을 의식, 수출대금을 외환시장에
내놓지않고 있다.

지난달말 거주자외화예금 규모는 사상 최고수준인 47억1천만달러에 달하고
있다.

특히 지난 24일이후에는 매일 1억달러이상씩 늘어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물론 외화예금의 증가는 해당은행의 외화유동성 사정을 단기적으로 호전
시키겠지만 그렇다고 외화수급여건이 좋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디스 S&P(스탠다드앤드푸어스) 등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이미 국내 금융
기관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기 때문에 외국계은행으로부터의 신규차입은
엄두도 내지못하고 있다.

이날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른 이유는 정부에 대한 실망감도 크게 작용했다는
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당초 환율안정부문에서 "특단"의 조치를 기대했던 외환시장 주변에는 막상
별다른 "재료"가 나타나지 않자 당국이 환율상승의 길을 터주는게 아니냐는
심리가 강하게 확산되고 있다.

모은행 딜러는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금융개혁법안의 국회통과와
연계하려한다는 소식은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사실을 실토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 조일훈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