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23일 남북경제협력 활성화조치를 취하고 같은날 남북적십자
대표들이 한국상표를 붙인 구호식량제공에 합의한 것은 냉각된 남북관계에
화해의 물꼬를 틀수도 있는 주목할 만한 변화임에 틀림없다.

(주)태창에 대한 남북협력사업승인은 지난 95년4월 대우에 이은 두번째
직접투자 허용이며 LG전자등 4개기업의 남북협력사업자 승인도 10개월만에
재개된 것이다.

이로써 남북경협여건은 작년8월의 북한잠수함 침투사건 이전 상태로
복원된 셈이다.

남북경제교류는 짧은 역사에 비해 급속도로 진전돼온게 사실이다.

5백여개의 국내 업체들이 매년 2억~3억달러 규모의 남북교역을 성사시키고
있고 지난해에는 남북최초의 합영회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경협은 아직 튼튼한 뿌리를 내리지 못한채 남북관계의 긴장과
완화 국면이 뒤바뀔 때마다 부침을 거듭, "살얼음판의 곡예"처럼 진행되고
있다.

북한이 이번 적십자회담에서 다소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고 하여 그것이
전반적인 남북관계의 호전이나 남북경제교류의 확대로 이어지리라고
기대할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당분간 남북간 대화나 경협보다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방세계와의
경제협력에 더 비중을 두는 기존의 정책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북 경제교류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역시 민-관 모두가 좀더
신중해야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이 앞다투어 추진중인 대북 직접투자는 제반여건이
성숙할 때까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직접투자가 본격화되려면 투자보장협정, 2중과세 방지협정 등이 먼저
체결돼야 한다.

현단계에서 남북경협을 추진중인 우리기업들이 우선적으로 해야할 일은
위탁가공교역 품목을 다양화하고 낮은 수준의 기술을 북에 이전함으로써
교역을 확대,직접투자시대에 대비한 협력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독일만 보더라도 통일전 거의 40년간의 합법교역과 20년 가까운 경협의
역사를 쌓았지만 직접투자 등의 협력보다는 어디까지나 교역이 주를
이루었다는 점을 우리기업과 정부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동서독간 경제교류에서는 상품용역거래와 구상무역 등 "1차원적 교역"이
전체 경상거래의 85~90%를 차지한 반면 임가공 위탁조립 라이선스생산 등
"2차원적 협력"은 10~15%에 불과했으며 최고의 발전형태로 볼 수 있는
합영-합작투자는 단 한건도 없었다.

이는 체제가 다른 분단국간의 고차원적 경협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말해주는 좋은 예라고 할 것이다.

아직도 북한은 우리정부를 상대로 남북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과거에도 수없이 보아왔듯이 언제 무슨 일로 하여 남북관계는 하루아침에
급랭할지 알수 없으며 그럴 경우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기업 뿐이다.

정부의 이번 대북 경협활성화조치와 북측의 태도변화를 확대해석하거나
앞질러나가 피해를 자초하는 기업이 있어선 안되겠기에 하는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