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악재가 사라진 남북관계는 급진전할수 있을 것인가"

한반도를 3개월여동안 꽁꽁 얼려 놓았던 북한 잠수함침투사건에 대해
북한측이 지난해 12월 29일 외교부대변인 명의로 평양방송과 중앙통신을
통해 시인.사과및 재발방지약속을 천명함으로써 일단 남북관계를 가로막던
"걸림돌"이 제거됐다.

이에따라 97년 남북관계는 "쾌속항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놓은 상태에서
"잠수함 이전"의 상황보다 얼마나 더 앞으로 나아갈수 있을지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지난해 남북관계는 "잠수함사건"을 경계로 그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분
된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는 비록 느리지만 남북관계가 조금씩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 95년 12월 대북경수로공급협정이 체결된뒤 96년들어 4월 뉴욕에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간에 "특권.면제및 영사보호에 관한
의정서"및 "통행의정서및 통신의정서"에 관한 협상이 있었다.

협상결과 "특권.면제의정서"는 96년 5월 22일에, "통행및 통신의정서"는
96년 6월 14일에 가서명됐고 곧바로 7월 뉴욕에서 공식 서명됐다.

하지만 의정서가 서명된뒤 불과 2개월여만에 잠수함침투사건이 발생, 모든
후속작업이 중단됐다.

대북 경협사업은 물론 인도적인 식량지원까지 금지됐고 남북간 교역량도
급속도로 줄었다.

북한도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폐쇄하는등 강경책으로 맞대응, 한반도사태가
극도로 악화됐다.

비록 미국이 중재자로 나서는 남북간 간접접촉 형식을 취했지만 북한이
우리측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는 선에서 공식 사과성명을 발표함으로써 남북
관계는 중대한 국면전환을 맞게 됐다.

특히 97년은 우리측의 대선정국과 북측의 김정일 공식권력승계등 남북한
모두 중요한 내부 정치일정을 예정한 상태여서 "사과이후"의 한반도정세가
4자회담을 위한 3자공동설명회등을 계기로 급반전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지난해말 미북간 실무접촉에서 이미 북한의 3자설명회참가가 사실상 합의된
상태이기 때문에 설명회를 기점으로 남북간 직접대화와 경협활성화등이
뒤따를 경우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도 기대해 볼만하다.

여기에 북한당국이 사실상 우리측에 "백기"를 들고 사과를 한데다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공동노력"까지 천명한 상태여서 북한이 경제활성화등을
구호로 좀더 적극적으로 우리측에 관계개선을 위한 화해의 손짓을 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이달중 열리게될 3자공동설명회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3자공동설명회의 성패여부는 앞으로의 남북관계 진전은 물론 한반도 평화
구축의 열쇠를 쥐고 있는 4자회담개최 여부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97년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틀을 획정짓는 첫단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4자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구축문제 뿐만아니라 <>남북
경협확대 <>대북식량지원 <>경수로사업의 원활한 추진 <>대북경제제재완화등
남북.미북 관계개선의 전기를 마련할수 있는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따라서 한미양국은 공동설명회에서 북측에 대해 가능한 "당근과 채찍"을
총동원, 4자회담 수락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사과이후 가장 먼저 기지개를 켤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대북
경수로사업.

KEDO와 북한측 협상실무팀간의 공동문안작성에도 불구하고 잠수함 사건후
최종 합의를 유보해온 부지인수및 서비스의정서에 대한 서명이 조만간
이뤄질 것이 확실시된다.

동시에 경수로건설예정지인 신포지역에 제7차부지조사단이 파견되고 통신.
통행문제에 대한 세부협상을 위해 KEDO측 협상단이 곧 북한을 방문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준비과정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빠르면 올해 경수로사업착공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적을 창구로 한 민간차원의 대북지원도 곧바로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한적은 그동안 9차례에 걸쳐 북한을 지원했으며 현재 2억5천여만원의
기탁금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관련, 최근들어 민간단체들이 정부의 한적창구단일화및 쌀 제외방침에도
불구하고 국제기구를 통해 쌀.현금지원을 추진하고 있어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분배에 대한 투명성만 확보된다면 대북지원품목에 쌀이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남북경협도 빠른 시일내에 잠수함사건이전으로 원상복귀될 전망이다.

그동안 미뤄온 기업인들의 방북이 재추진돼 대북투자움직임이 활성화되고
LG그룹등 남북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몇몇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승인도
조만간 있을 것으로 점쳐진다.

특히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나진.선봉 무역관설치 추진문제와
한국토지공사의 나진.선봉 한국공단조성 추진 움직임이 주목된다.

그러나 남북관계 진척을 가로막고 있던 중대한 장애물이 제거됐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기는 아직 이르다.

잠수함사건 사과문제해결은 남북관계의 시계 바늘을 잠수함사건이전으로
돌려 놓았을 뿐이라는게 정부의 기본시각이다.

즉 무력도발에 대한 북한측의 사과는 당연한 것이며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위해 북한측이 근본적으로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선물"이 주어질수는 없다는 점을 정부는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민간단체나 국제기구등의 대북
식량지원은 비교적 빠른 시일내에 진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남북간의 현안은 국민정서,북한의 태도,국제적 분위기등을 지켜보면서
점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가 곧바로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북경수로
사업 <>대북지원문제 <>남북경협등 그동안 잠수함사건으로 묶여 있던
문제들은 서서히 풀려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 이건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