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소리라니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요"

습인이 귀를 기울여 보았으나 소상관에서는 스산한 바람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저 소리 들어보라니까. 여자가 울고 있는 소리잖아"

아닌게 아니라 습인이 좀더 유심히 귀를 기울여보니 바람 소리 속에
사람의 울음소리도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밤마다 소상관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과연 사실이란
말인가.

여자의 울음소리라면 대옥의 귀신이 와서 흐느끼는 소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습인은 등골에 소름이 확 돋는 것을 느꼈다.

"대옥 누이가 울고 있어. 아, 대옥 누이! 대옥 누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바른 정신으로 모든걸 잘 분별했어야 하는데.

대옥 누이, 나를 너무 원망하지마. 내가 얼마나 대옥 누이를 사모했는지
대옥 누이가 잘 알잖아"

보옥이 대옥의 방을 향해 대부인께서 보옥이 대관원으로 갔다는 말을
듣고 크게 걱정하고 있다고 전하였다.

보옥이 눈물을 훔치며 습인과 함께 대부인의 거처로 돌아갔다.

대부인은 병석에 누운 채로 습인을 심하게 꾸짓었다.

"대관원에 귀신들이 나타난다 하여 도사들을 불러 귀신을 내어쫓는
법사를 벌인 지도 얼마 되지 않는데, 겨우 병이 나아가는 도련님을 그런데로
데리고 가?

아직도 어느 구석에 숨어 잇는 사귀라도 만나면 어떡하려고 그래? 날도
저문 때에 말이야"

습인은 변명 한마디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기만 했다.

며칠이 지난 후, 가사의 딸 영춘이 남편 손소조의 구박에 끝내 병이
들어 숨을 거두고 말았다는 소식이 영국부에 전해졌다.

대부인은 그 소식을 듣고는 더욱 병이 악화되어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대부인든 마침내 여든 세 살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였다.

기울어가는 가씨 가문이긴 하지만 대부인의 장례가 어마어마하게
치러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대부인의 장례가 다 치러자고 난 후, 시녀 원앙은 평소에 대부인이
돌아가시면 자기도 따라 죽을 것이라고 말해온 대로 자결을 하려고
결심했다.

자결할 장소는 대부인의 방으로 정했는데 자력방법은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원앙은 어스름 무렵 텅빈 대부인의 방으로 일단 들어가보았다.

그런데 이미 어떤 여자가 허리띠로 선반에 목을 매달고 있지 않은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