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요 언론의 1면을 장식한 한화종금과 관련한 경영권분쟁은
일반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지난 수십년간 재계와 정계,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대재벌에게
이름 없는 몇몇 개인들이 나타나 느닷없이 알토란 같은 계열사를 내놓으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엇으며 일단 새로운
상황의 전개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의 시선들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90년대의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먼저 몇 가지 우려의 목소리를 요약해 보면 첫째로 정부의 시책에 따라
소유분산을 제대로 한 기업일수록 "억울하게" 기업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는 관점에서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와 둘째로 비생산적 경영권
확보경쟁으로 기업의 에너지가 낭비될 것이라는 우려, 셋째로 외국기업들이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국내기업들을 무차별 인수하지않겠느냐는 불안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우려가 국내실정에서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현실적으로 설득력있는 주장들은 아니다.

오히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함으로써 국가경제적
측면에서 중요한 관점들을 흐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소유분산을 제대로 했기 때문에 기업을 뺏길
가능성이 오히려 커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기업공개로 얻은 직접
및 간접적인 이득은 무시하고 자신으 기득권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 경영권방어 때문에 기업의 재화가 낭비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면
먼저 경영진의 잘못된 기업자산 운용으로 경영성과가 좋지 않을수록
경영권에 대한 도전을 받기가 쉽고 경영성과가 좋은 기업일수록 이를
인수하는 비용도 커져 경영권 도전에 따르는 경제적 실익이 없어진다는
지극히 평범한 경제원리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외국기업이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적대적으로 인수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인수한 기업을 원만히 경영하기 어려워 경제적 실익이 없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할 사항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소액주주들이 시장에서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한화종금의
경우는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 한국경제가
어떻게 변신하여야 하는가를 돌이켜보게 하고 있다.

먼저 경영진의 전횡과 비효율로 인해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보고있다는
소액주주들의 주장은 상장기업 경영진의 경영활동에 대한 감시와
견제기능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더이상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경제사안이라 할 수 있다.

국내 M&A(기업인수.합병) 거래에서 상장기업의 경영권에 대해 턱없이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하고 또 지불하는게 당연시되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경영감시기능의 부재를 이용해쉽게 자금을 조달하고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근거하고 있다.

이를 방치할 경우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는것은 물론 국내기업의
국제경쟁력 악화를 부추겨 한국경제의 선진국 진입을 어렵게 할 것이다.

둘째로 실질적인 차명에 의한 주식보유 및 주식매집이 거의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음에도 금융실명제와 증권거래법이 입법취지에 맞게 지속적으로
보완되고 개정되지 않아 효과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차명금융거래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현재 지나치게 과소평가되고
있으며, 심지어 주가하락이나 경기침체를 실명제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조차도 흔히 볼 수 있다.

차명에 의한 주식거래가 용인되는 한 자본시장구조가 왜곡되리라는
것은 상식이며 이로 인한 일반투자자들의 피해뿐만 아니라 기업의
자금조달 왜곡 등으로 국내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리라는 것은
명확하다.

특히 차명에 의한 은밀한 적대적 M&A로 "억울하게" 기업을 빼앗길지도
모든다는 예외적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M&A의 거시경제적 순기능이
왜곡될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한화종금사례가 세인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거대재벌에 대한 무명기업인의 도전이라는 측면일 것이다.

사실 한화종금 인수시도가 어떤 동기에서 시작되 어떤 형태로 결말이
나던간에 이러한 시도 자체가 향후 한국재계의 재편에 대한 심리적
장애요인을 제거하는데 적지않은 기여를 하는것은 물론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한국재계의 재편에 시동을 거는 중요한 계기가 될것이다.

이제 현 한국재계구도가 성립된지 30년이 지나고 있으며, 현재의 경영
환경이 30년여전의 경영환경과 판이하게 다른 반면 경영방식에 뚜렷한
변화를 보이지 않는 재벌들이 대다수라는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한화종금
사례와 유사한 경우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지난날의 비정상적 정치경제적
환경을 감안할 때 도덕적 취약점을 갖고 있지 않은 국내기업인은
거의 없으리라 여겨진다.

때문에 향후 유사한 경우의 M&A에 있어서 해당기업인의 개인적 도덕성에
판단의 기준을 두기보다는 M&A 진행과정의 투명성과 해당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어 기업에게 경영적임자를 찾아주는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경영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모든 M&A의 핵심은 감정싸움이나 기득권 주장이 아니라 냉정한 경제적
계산에 의한 경영효율의 제고에 있다는 점에서 경영권 방어를 위한 근본적
대책은 경영효율의 극대화에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