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기생"하면 보통 낭만적인 일들을 떠올린다.

문학적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고 미모와 지조를 갖춘 여인들,
사대부와 기생의 애틋한 로망스, 풍류문화의 꽃 등등.

이는 대다수 기생들의 삶은 알려지지 않은 채 황진이 이매창 등
사대부들의 사랑을 받았던 극소수 기생의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만이
회자되기 때문이다.

15일 방영된 EBSTV의 역사다큐멘타리 "역사속으로의 여행"(연출 김민)은
"기생의 사회사"라는 제목아래 조선시대 여덟가지 천민계층중 하나였던
기생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기생의 발생 이유에 대해 인류학적으로 접근하고, 신분사회 특히
조선 사대부사회에서 기생의 사회적 지위와 습속 규율 생활방식 등을
고찰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기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자
한 노력이 엿보였다.

다큐멘터리는 방송작가가 기생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취재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 프로그램의 기본시각은 기생은 사대부의 성적 노리개였다는 것이다.

천민이라는 신분적 고통과 성적 억압이라는 이중적 고통을 갖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허용된 교육과 몸치장도 사대부들의
품위를 유지하고 유희를 증대시키려는 수단에 불과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더 나아가 남성지배구조의 비판으로 이어진다.

김부용 이매창 등 유명한 기생들의 애환도 소개됐다.

하지만 "뛰어난 시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참된 모습이 가려진게 아닐까.

시를 짓고 난초를 치는 모습만을 보려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문제제기를 잊지 않았다.

세종실록에 나오는 기생존속론과 기생폐지론을 비교해 소개한 것도
흥미로웠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말하고자 하는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청소년을 주시청자로 내건 프로그램치고는 해설이 딱딱한
역사책을 읽는 것처럼 너무 어려웠다.

기술과 제작상의 어려움을 감안하더라도 그림과 소리의 유기적인
결합이 부족한 것도 신경이 쓰였다.

적어도 화면이 나레이션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 송태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