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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을지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70)는 우리나라 법조계의 원로이며
경제법분야의 대학자이다.

53년 청주지방검사에서 시작해 82년 법무장관에서 물러날때까지 검찰계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경제법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여러권의 저서를
발간하는등 학문과 현실의 조화를 꾸준히 탐구했다.

서울지검 부장검사시절 동베를린공작사건 통혁당사건등에서 준엄한 논고로
법정을 숙연하게 했던 일은 지금도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다.

법무장관에서 물러나자마자 동서경제법연구소를 설립하고 법무법인을
설립해 변호사로 변론에 나서는등 사회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업적으로 이변호사는 지난 20일 교수출신이 아닌 인사로서는
드물게 동료및 후배 법조인과 학계로부터 고희기념 논문집 "법과 경제"를
증정받았다.

70의 나이가 무색하게 왕성한 활동력을 과시하는 이변호사를 서울 을지로
을지합동법률사무소에서 만나 지난 일생과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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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박영균 증권부장 ]]]

-고희기념 논문집 발간을 축하합니다.

<>이변호사=별로 내세울 것도 없고 후학을 기르는데 힘쓰지도 않아
고희기념 논문집 발간하겠다는 제안을 여러차례 마다했습니다.

그러나 동료및 선후배 법조인과 학계의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권유하고
또 저자신도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점검하는게
좋을듯해 발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부제를 "미완의 자화상"으로 달았습니다.

-방대한 분량인데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이변호사=법조계와 학계의 여러분들이 현실 법체계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엮어 가히 시사다큐멘타리라고 부를만하지요.

집필자들이 모두 정성을 들여 참여해주셨지요.

집필자의 철학이 담겨있고 경제법 전반의 변화방향도 제시하고 있어
탐독할 가치가 있습니다.

-지난 74년 경제법연구소를 만드시는 등 법과 경제의 조화를 위해
노력하셨는데요.

<>이변호사=박사학위를 받은 그해 판.검사 교수 등을 모두 망라해
만들었습니다.

제가 법조계에 몸담으며 느낀바로는 법의 논리와 경제의 논리중에는 법의
논리가 우위에 있어야 합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경제행위들은 사회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지요.

법이 경제의 선도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현실은 법이 경제를 뒤따르고
있습니다.

동서법경제연구소는 법이 미래를 예측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설립했습니다.

요즘 규제완화의 목소리가 높은데 오히려 강화해야 할것도 있습니다.

도시계획과 환경문제는 경제의 논리로는 절대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기업인들에게 경제법하면 많은 사람들이 행정규제와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데 은행에는 은행법 종합금융회사에는 종합금융업법등 규제성격의
법이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이변호사=경제법의 전형은 독점규제법 공정거래법입니다.

공정한 게임의 룰속에서 자유경쟁을 해야한다는 취지이지요.

사실 규제완화가 이뤄지지 못하는 것은 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부부처가
부처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법과 법해석 사이에는 갭이 존재하며 공무원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고해
자의성이 개입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법이 제대로 서고 취지에 맞게 법해석을 하고 집행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그럴때야 각종 규제완화도 가능합니다.

-최근 들어서 정부가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관련법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법이 정의를 추구한다면 경제법적 측면에서 최근의 움직임은 바람직한
면이 있으나 기업인들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또 공공노조의 해직자복직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구요.

<>이변호사=미국 영국등 선진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비해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는 짧습니다.

선진국 노조가 경영에도 참여하고 작업중지권을 갖는 것등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지만 어느정도 시기가 지나서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지금 기업들은 격화되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아야할 때입니다.

경영자가 리더십을 갖추고 이끌면서 국제경쟁력을 강화해도 어렵습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도 좋고 노조의 경영참여도 해야하지만 경제발전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한국은 OECD가입도 앞두고 있지만 너무 평등을 앞세우면 침몰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 개개인의 능력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평등을 추구했던 공산주의의
몰락이 잘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국제경쟁에서 살아 남아야지 파이를 나눠먹는데만 앞장서서야 되겠습니까.

-앞으로 법률서비스 분야에서도 시장개방이 이뤄지면 국내 법무법인
(Law Firm)도 경쟁력을 갖춰야하지 않겠습니까.

법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법무법인제도를 만들고 장관직에서 물러나서는
법무법인도 직접 설립하셨지요.

<>이변호사=저는 특히 법무법인제도를 마련한 것에 긍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법무법인은 지난 83년1월부터 시행된 새 변호사법에 의해 처음 도입
됐습니다.

지금 전국에 90여개의 로펌이 산재해있습니다.

곧 100개가 넘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앞으로는 법률회사들도 조직화돼야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민사 형사 세무 특허 국제법률 법률구조및 법적분쟁의 사전예방등 부문별로
전담변호사를 둬야 조직적이고 질좋은 법률서비스가 가능합니다.

제가 법무법인을 직접 설립한 것도 법률서비스가 개방돼도 로펌들이
살아남도록 반석위에 세우겠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법조계에 진출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한데요.

<>이변호사=일제시절 전주사범학교를 마치고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잠시하다가 일본이 망하면서 새세상이 열릴 것으로 보고 대학에 진학했지요.

고려대 정법대 예과 2학년때 영어웅변대회에 출전해 3등을 했습니다.

그때 주제가 "Man of Power"였는데 실력자.실세의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당시에 이미 실력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나 보지요.

어쨌든 법조계로 진출하게 된 건 정말 순간적이었어요.

저는 경영인이 되기 위해 본과를 상학으로 바꿨습니다.

본과 1학년때인 49년에는 이미 전쟁의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졸업을 하려면 앞으로 3년은 더 있어야하는데 혹시 전쟁때문에 졸업을
못할까봐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지요.

그런데 우연히 신문을 통해 변호사시험공고를 보게됐고 자격증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시험을 치뤘습니다.

공부기간이 3개월밖에 없었지만 타고난 체력으로 집중적으로 공부해
무난히 합격하게 됐어요.

결국 실력자에 대한 동경과 임박한 전쟁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오늘의
나를 이끌어온 것입니다.

-검찰로 재직하면서 공인회계사 자격증도 획득해 교사 회계사 변호사등
3개의 자격증을 갖고 계십니다.

만일 다시 태어나신다해도 법조계를 택하시겠습니까.

<>이변호사=아까도 말했듯이 법조계 진출은 전쟁때문에 우연히 이뤄진
것입니다.

만일 다시태어날수 있다면 학계로 진출하고 싶습니다.

사실 경제법이라는 것도 다수설 소수설을 얘기하고는 있지만 아직 확립된
학설도 없습니다.

경제현상에 대한 법적 해석이라는게 충분한 연구가 있어야돼요.

국내학자들은 지식이 없이 조금 들떠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문제제기 수준이 세계와 비교할때는 다소 뒤진다고 느낌도 받고 있고요.

앞으로는 지식이 파워가 되는 시대입니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 적절하게 예측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얘기죠.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어떠신지요.

<>이변호사=앞으로는 사회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법률문화를 선진화
하는데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종교생활도 열심히 할꺼구요.

이번 논문집은 지난 생활을 중간결산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 이번 논문증정식을 계기로 1925년에 출생한 동갑내기끼리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구자경 LG그룹명예회장 양재봉 대신증권회장 등이 멤버인데 명칭이
"2025구락부"입니다.

2025년까지 살면서 사회를 더욱 발전시키는데 기여하자는게 모임의
목적이지요.

물론 100세까지 살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백만은 확실합니다.

2개월에 한번씩 모이는데 기금도 모으고 있습니다.

우리 모임의 결성과 패기를 보고 다른 분들이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체력도 좋으셔서 충분하실 것 같습니다.

<>이변호사=제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틈만나면 철봉 평행봉등 기계체조를
했고 지금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스키타고 여름에는 수상스키를 즐기는등 만능스포츠맨이라고
자부하고 있지요.

그러나 체력보다는 뭔가를 하겠다는 "비전"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해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