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악화되기 시작한 수출채산성의 영향이 약 6~7개월의
시차를 두고 가시화됨에 따라 올해 2.4분기부터 주력 제품의 수출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우선 반도체의 경우 올초부터 공급과잉 현상으로 국제시장 가격이 불과
몇달만에 지난해말의 절반이하로 떨어져 큰 폭의 목표미달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자동차수출도 처음 목표보다 10%이상 떨어질것 같으며 섬유의류,
석유화학, 가전제품 등도 중국시장의 수요감소및 세계시장의 공급과잉으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수출이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는 까닭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엔화가 크게 절하된 데다 원자재 가격마저 올라 가격경쟁력이
약화됐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생산품목의 다양화및 고부가가치화를
소홀히 한 탓으로 풀이된다.

예를 들면 반도체생산및 수출에서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너무 크다든지,
자동차업계가 규모의 경제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 지나친 시설확장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수출부진은 경상수지 적자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경기
연착륙마저 위협하기 때문에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한다.

최근의 증시 주가급락도 비관적인 수출및 경기전망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뒤늦게 정책당국도 올해 국제수지 방어목표를 지키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업종별 모임을 통해 현황을 파악한뒤 오는 6월초 경제장관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지원내용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책선택의 폭은 매우 제한돼 있다.

옛날처럼 수출금융을 줄수도 없고 환율을 조정할수도 없다.

따라서 우선 가격경쟁력을 강화해 하반기부터 내년까지 예상되는
국제시장의 재편 또는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아야한다.

그러자면 정책당국은 환율 금리 임금 불가 등 거시경제변수들을
하향안정시켜야 하며 기업은 원가절감, 투자시기및 우선순위조정, 생산성
향상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환율이 현재수준에서 더이상 절상되지 않도록 하반기에 예정된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확대를 연말까지 늦추고 필요한 경우에는 중앙은행의
간접적인 개입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물가 임금 금리
등의 안정기조를 다져야겠다.

이밖에도 수출선수금의 한도확대,해외투자에 적용되는 자기자본
의무비율의 조정 등의 규제완화를 앞당겨 업계의 자금회전을 원활하게
도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업계의 내수기반을 위협하는 수입선다변화제도의 철폐는
가능한한 늦추도록 협상해야 하겠다.

기업들도 무리한 시설확장을 지양하고 품질향상및 신제품개발을 위해
해외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노사화합에 힘쓰고 생산성증대를 위한 인센티브제공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경영환경이 어려울때 진정한 기업가정신이 발휘되듯이 다가오는 21세기에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지금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