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오늘 석탄절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 있다.

이 나라 정치인, 국회의원의 본업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정치하는 것이 본업이라고 대답하면 우문일수 밖엔 없는가.

그러나 한마디로 국회의원들이 맡은 정치, 즉 국민을 대표해서 나라일이
잘되게끔 법을 제정-개폐하고 예결산을 심의하며 행정부를 감독하는 업무를
제대로 해왔고, 하고 있는가를 그들에게 또는 일반 국민에게 묻는다면 과연
얼만큼 만족할 대답이 나올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여기 어느 기관이나 학자의 설문조사 결과를 대입하려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14대까지의 성과는 논하고싶지도 않고 다만 총선이후
달포동안 여-야 각당, 청와대, 선관위와 관련부처 등이 국회의 기능발휘를
위해 해온 일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을 따름이다.

개표 직후엔 너무 뚜렷한 지역대결 현상과 소위 여소야대 결과를 놓고
당이건 개인이건 기뻐한 쪽 보다는 반성을 하고 좀 더 잘해 보려는 쪽이
더 눈에 띄었다.

하나 이내 빠져든 방향이나 태도는 아주 달라졌다.

반성-각오는 어느새 게눈처럼 사리지고 보이느니 속임수 아집 모략에다
파쟁의 고함소리만 하늘을 찌른다.

무엇보다 부정선거는 여-야 불문 엄단한다던 추상같은 엄포가 행방불명
이다.

국민거개의 예상과는 달리 하나같이 닭잡아 먹고 오리발 내밀듯 모두
공명했노라고 시치미뗐고, 이에 선관위건 검찰이건 기백있는 사정기세를
비치질 않으니 공명선거는 백년하청이라는 국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여기 엎친데 겹친 찬물은 단시일내 다수당을 기어코 만들어 내고야만
여당의 막무가내한 전의, 그리고 이에 맞선 야측의 극한 항쟁이다.

이미 물이 쏟아진 야측의 위헌제소-장외투쟁 양면전은 협상이라는 여당의
대응이 쉽게 먹히기 힘들만큼 틈이 벌어져 있다.

그렇다면 손해는 누가 보는가.

1차로 첩첩이 당면한 국사의 체증이고 2차로는 정치 자체이며 종국엔
국민이 손해다.

굵직한 현안을 몇가지만 꼽아도 그것이 행정부처나 청와대에 맡겨지는
것으로 그만인 성질이 아니다.

4자회담이 제의되고도 한달 넘도록 정체를 거듭하는 속에 미그19기
1대가 귀순하는 북한문제가 우선 그렇다.

비록 당선 현역 의원들이 일정 역할을 자처한다든가, 여론의 취합이나
선도기능은 못한다 해도 촉구 결의안을 준비하려는 모양새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는가.

당장의 한-약 분쟁은 한표라도 잃을까 벙어리 시늉이고, 월드컵축구
유치가 절정에 오도록 어느 정치인의 관심표명 하나 들리지 않는다.

하물며 연구를 요하는 경제 문제랴.

노동관련법 개정, 새 대기업정책, 국제수지방어등 절실한 경제난제 앞에
어느 당, 어느 의원도 열의커녕 관심돌릴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정치는 자체만의 문제를 무한히 발생시키고 처리하는데만도 힘겨운
존재인가.

일부의 우려와 같이 과연 경제를 앞으로 밀기는 커녕 뒤에서 발을 당기는
존재인지 우리는 묻고 싶다.

범정치권은 변명이 아니라 이에 실천적 행동으로 답해주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