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참사가 일어난지 한달이 됐다.

삼풍사고의 후유증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실시된 대형백화점의 여름 바겐
세일도 지난주에 끝났다.

백화점 업계는 자숙하는 의미에서 세일 시기를 늦추고 기간도 10일에서
5일로 단축했다.

세일 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든 탓에 매출액은 30%안팎 감소했다.

같은 5일간씩의 매출을 비교하더라도 신장률이 20%정도로 둔화됐고 일부
백화점은 그나마 한자리수 성장에 머물렀다.

백화점의 바겐세일 매출신장률이 계속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던 터에
삼풍사고의 악재까지 겹친 것이다.

삼풍사고는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백화점의 이미지를 여지없이 실추시켰다.

백화점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사기 세일,식품의 유통기한변조,안전을 무시한 매장증축, 주차장의 불법
용도전환등 오로지 장사에만 매달리는 모습으로 비쳐질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백화점들은 사고발생후 세일에 들어가면서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안전점검
퍼트롤팀을 운영하는등 안전에 신경을 쓰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과성의 대응이 근원적인 대책이 될수는 없을것 같다.

의식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고객은 왕이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것 같다.

"고객을 귀하게 모시는" 의식이 몸에 배어 있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백화점이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때와는 주변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선진국의 할인 신업태가 국내에 도입돼 가격파괴 현상을 일으키면서 세를
확장하고 있어 변화가 강요되는 시점이다.

내년에는 유통시장이 완전 개방돼 선진노하우를 가진 경쟁력우위의 기업들
이 잇따라 국내시장에 진출하게 될 전망이다.

이러한 유통환경의 변화속에서 소비자의 알뜰구매 의식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바겐 세일을 기다리는 소비자들, 거리가 멀더라도 할인점을 찾는 소비자들
이 늘고 있다.

소비자는 양질의 제품을 값싸게 구입하고 싶어한다.

종전에는 공급자주도 시장이어서 소비자가 권리를 찾는데 제약을 받았으나
구매자시장으로 바뀌면서 소비자의 상품선택권이 신장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국산과 외국산을 놓고, 여러점포의 상품구매조건을 놓고 선택
할수 있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소비자의 파워가 커지고 있다는 말이다.

정부도 경쟁을 통한 가격안정을 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쟁 제한 요소들을 없애고 권장 소비자가격 폐지를 검토하는 것도 가격
안정책의 일환이다.

이처럼 유통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 만큼 백화점들도
이에 맞는 변신이 있어야 할것 같다.

거듭나는 각오로 자성하지 않고는 소비자의 신뢰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백화점들은 지진과 독가스 사고를 겪으면서 위기관리경영에 눈을
돌리고 있다.

고객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도 매뉴얼에 의한 위기관리체계가 구축됐을
때 가능하다.

위기를 맞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여기에 대비하는 자세와 그렇지 않은
주먹구구식의 응급대응에는 큰 차이가 있을수밖에 없다.

국내 백화점들이 판매사원의 70%안팎을 입점업체의 파견사원으로 구성해
놓은 상태에서 교육이 제대로 될리 없고 위기관리 경영체제를 구축하기도
어렵다.

삼풍의 경우처럼 하의상달의 통로가 막혀 있고, 더욱이 올바른 직언을
할수없는 조직이라면 애초에 제대로 되리라는 것은 기대할수도 없다.

앞으로 백화점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추석시즌을 맞게될 것이고 10월에는
가을 바겐세일을 실시하게 될것이다.

그때쯤이면 삼풍참사의 여파는 거의 사라질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속에 묻혀버린 것처럼 똑같은 과정을 거치게
될것이다.

그러나 삼풍사고의 교훈만은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

새롭게 발전하는 전기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각오는 비단 백화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게다.

기업윤리를 저버리는 삼풍같은 기업이 없어야 하고, 책무를 다하지 않는
공복이 더이상 남아 있어도 안될 것이다.

사고가 날때마다 국민에게 다짐만 하고 이행하지 않는 정부 당국자를 또
다시 보는 일도 없어야겠다.

국민소득이 1만달러, 2만달러가 된다고 해서 선진국은 아니다.

국민소득에 걸맞는 의식이 뒤따라야 한다.

모두가 진정으로 자성하고 새롭게 태어날 때 비로소 선진국은 우리 앞에
전개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