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하고는 25년을 살았고 "허심회"하고는 30여년을 살았다.

그러나 소박한 우리의 모임에 "허심회"라는 제법 철든 간판을 붙이게
된 것은 불과 1년이 채 안된 작년 겨울이었다.

1962년 서울대법대 입학생 1백60명중 유일한 복학생 6명,우리 늙다리
학생들은 아무리 우려먹어도 재미있는 병영생활의 애환을 청량제 삼아
학창생활을 같이 보냈고,학교를 졸업하고도 수시로 만나 세상얘기 직장
얘기 인생얘기등으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40대를 넘어오면서부터는 부인들이 자연스레 합류하게 되어 모임의
빈도도 더욱 잦아지고 그들의 취미를 서로 알게되어 반드시 부부동반으로
등산모임 극장모임 노래방모임 온천모임등 다채로운 모임을 갖곤 하였다.

그러나 1년에 한번씩 갖는 휴가철에는 가급적 새로운 곳을 개척하여
3박4일간 함께 행동하면서 지난날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꿈을 설계하면서
몸과 마음에 붙은 피로를 말끔히 털어내곤 하였다.

작년 겨울 우리는 1박2일 일정으로 부산에서 동래 범어사 관광을
마치고 허심청이라는 온천장에 여장을 풀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빨려들어 우리는 제법 청정해지기까지 했었는데
벌써 우리가 50고개를 넘어섰으니 이제부터는 의연하게 마음을 비우고
열린 마음을 갖고 살아가자고 다짐하게되었다.

마음을 비우고 열린 마음을 갖는다는 것- 마침 허심청에 머무르게된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무슨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듯 우리는 허심이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수 있었다.

우리 스타일의 모임의 이름은 이렇게 하여 탄생하였다.

대부분의 동아리들이 다 그렇듯이 모임의 특정한 성격에 따라 구성원이
모이는데 반해 우리의 모임은 구성원이 먼저 생기고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다양한 취미를 공유하고 조화시키면서 여가생활에 변화를 주는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더욱 값지고 보람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늘도 각자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힘차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회원들을 소개하면 김종환(대한투신 사장) 김은택(한진해운 상무)
권일웅(수출입은행 부장) 노훈건(재경원 국장.런던주재) 양성모
(재보험공사 상무)씨,그리고 모임의 간사를 맡고 있는 필자등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