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의 기세가 놀랍다.

삼풍참사의 폐허에서 11일 만에 최명석군(20), 13일만에 류지환양(18)이
구조된데 이어 17일 만에 박승현양(19)이 살아 돌아와 X세대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어느 시대나 기성세대의 눈에 비친 신세대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모습이었다.

고대 동굴벽화속의 낙서중에도 ''요즘 젊은 것들은...''하는 의미의 글이
남아 있다고 한다.

60년대의 히피족이나 80년대의 여피족에 대한 시각도 역시 비판적이었다.

''X세대''라는 용어는 캐나다인으로 알려진 더글러스 코플랜드라는 작가가 91
년에 출간한 ''Ge neration X''라는 소설제목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윤은기씨(정보전략연구소 소장)는 ''골드칼라가 뛴다''는 그의 저서에서
X세대를 80년대의 경제붐속에서 성인이 되어 직장에 진출한 세대로서 완벽한
사회조직의 틀속에서 그들의 선배 부모세대가 누렸던 것조차 누리지 못하게
된 좌절의 새대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X세대는 사회에 대한 냉소로 일관하면서 현실도피도, 현실에 대한
정면도전도 아닌 냉소적 현실주의자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X세대는 상술의 하나로 어느 화장품회사의 광고에서 처음 등장
했다고 한다.

그러다 슬그머니 오렌지족 야타족으로 불똥이 튀어 살인집단 지존파의 범행
대상으로 지목되기도 하는 등 굴절된 이미지를 지니게 됐다.

아버지를 살해한 망나니까지 등장해 부동산 투기로 일군 졸부, 국내 대학
에 못들어간 해외유학파, 분수에 맞지 않은 고급승용차, 그들만의 폐쇄적인
술집 등을 연상시키는 타락 집단으로 매도돼왔다.

압구정동의 X세대들이 여론과 당국의 집중포화를 맞은후 새로운 이미지로
등장한 X세대는 톡톡 튄다는 연예인,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체육인등 젊은
우상들을 쏟아냈다.

신은경 고소영 심은하 김원준 서지원 이상민 우지원 현주엽 이상훈 김상진
이동수 김병지 노상래 김도훈 등등.

체육 연애인뿐 아니라 컴퓨터 광고업계등에서 무서운 X세대들이 대거 등장
하고 제법 알려진 기업인 이랜드는 배낭여행주선 등으로 X세대들의 꿈을
가꾸어주고 있다.

바둑계에서도 청출어람으로 세계를 제패한 이창호, 꽁지머리를 박박 밀고
노트북을 들고다니는 김성룔등 X세대의 돌풍이 거세다.

이들의 활약으로 X세대의 이미지가 고양된 가운데 삼풍백화점 참사에서
피어난 최군과 류양 박양의 스토리는 X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인식을 더욱
새롭게 하고 있다.

잇단 대형참사로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속에 등장한 이들의 미담은 기성
세대의 속죄의식까지 곁들여 최상급의 찬사가 총동원 되고 있다.

X세대는 나약하고 이기적이라던 비판이 발랄 명랑 당당 의연 건전 강인
씩씩 사려 효도 검약 건강 여유 순박 활기등의 찬양으로 바뀌었다.

그 지옥같은 암흑속에서 장난감기차와 칼 연마기로 무료함을 달래고, 룰라
김건모의 노래를 읊조렸으며, 구조될때 콜라와 냉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한
것을 보면 X세대의 전형이었다.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장하지만 최군과 류양 박양은 기성세대가 그리는
미덕을 두루 갖추어 흐뭇함을 더했다.

더욱이 그들은 우리주변의 보통 신세대였기에 감동은 더 컸다.

학교공부를 똑 부러지게 잘하지도 못했고 남을 앞설만한 특기나 재주도
없었으며 집안형편이 넉넉지도 않은 보통 신세대였다.

그러나 그들은 구김살이 없고 착하고 예절바르고 효도하는 젊은이였다.

그들이 살아 돌아온 후 한말들은 기특할 뿐 아니라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해준다.

"살아난 우리보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바깥 사람들의 관심과는 상관없이 전공인 건축설비학을 열심히 배워
평범한 회사원으로 사는 것이 나의 꿈이다"

"죽었다가 살아 돌아오니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생각이다.

게으르게 살아왔던 지난 세월이 후회가 된다"

특히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핵가족 시대에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화목한 대가족제도를 본 것이었다.

삼촌 외삼촌 이모들까지 생업을 중단하고 구조활동에 나선다는 것이 어디
보통일인가.

건전한 X세대, 화목한 가정이 기적을 불렀으며 이들이 있기에 그래도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여겨진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