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유럽순방을 계기로 한동안 냉랭했던 정부와 재계 사이에
화합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무한경쟁시대에 정부와 재계는 물론 국민 모두가 한덩어리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수 없다는 김대통령의 새로운 경제인식이 국정전반에 점차 확산되
고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27일 경제5단체장과 오찬을 갖고 격의없이 경제현안과 기업들
의 애로사항에 대해 논의하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새로운 민관경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것이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대통령이 경제단체장들을 만난 것은 각종행사를 통해 그동안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경제5단체장만을 따로 만나는 것은 지난 93년 3월과 8월이래 무려
1년6개월만이다.

<>.올들어 냉기류가 감돌던 정부와 재계 사이에 화합분위기가 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5일 유럽순방중 독일 본에서 수행경제인들과의 만찬이후부터.
당시 김대통령은 만찬도중 몇차례나 "선진국일수록 정부와 기업이 협력하고
있다"면서 "우리정부도 기업을 적극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4일 브뤼셀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는 "우리기업이 자꾸 해외로
나가는 것은 국내보다 외국이 기업하기 좋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우리
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김대통령은 귀국해서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유럽순방기간중에 받은 인상을
얘기하며 경제제일주의를 강조,국정운영의 최우선순위가 경제에 있음을 밝
혔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는 선진국에서 정부와 국민 모두가 한덩어리가 되
어 경제제일주의를 강조하는 것을 보니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진국에서는 첫째도 경제,둘째도 경제를 강조하고 있다"는 얘기를 국무위
원 청와대비서관 민자당간부 3부요인과의 연이은 회동에서 수차례 강조했던
것이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경제나 기업에 대한 인식을 유럽순방 이전과 비교해
보면 상당한 변화라고 할수 있다.

김대통령은 지난 2월9일 신경제추진회의에서 "대기업은 선단식 경영을 지
양하고 중소기업의 설 땅을 좁히지 말라"고 언급,대기업의 무분별한 기업확
장에 제동을 걸었다.

2월25일 있었던 대통령취임2주년 기자간담회에서도 "대기업이 무분별하게
문어발식으로 선단식 경영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대기업에 대해 부
정적인 시각을 갖고있는 것으로 비쳐졌다.

김대통령은 특히 "기업들이 청와대에 정치자금을 가져오지 않아 기분이 좋
을 것"이라고 말해 당시 재계가 정부에 대해 갖고있는 불만을 모르고 있다
는 인상마저 주었다.

이같은 김대통령의 발언은 올들어 정부가 대기업에 대해 취하고 있는 강도
높은 소유분산정책및 경제력 집중완화정책과 맞물려 정부가 "신재벌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재계일각에서는 해석,재계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최종현전경련회장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한 것과 때를 맞춰 공정거래위
에서 선경에 대해 내부부당거래조사에 착수한 것도 신재벌정책이 거론되던
시기였다.

<>.김대통령의 경제및 기업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바뀐 데에는 우리나라기
업들의 해외활동도 커다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국제사회에서 크게 높아진 데는 유럽지역에 진출한 삼
성 대우등 대기업들의 활동이 현지에서 호평을 받는등 기업들의 영향이 컸
다는 점을 김대통령이 새삼 인식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방문국마다 정상들로부터 한국기업의 진출을 고맙게 생각한다는 얘기
를 듣고 대통령의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고 청와대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경제제일주의를 내세우며 재계와의 화합분위기를 유도하고 있
는데에는 또 정부와 재계와의 마찰이 결코 사회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는 판단도 작용한 것같다.

지난해말의 각종 대형사고와 올들어 정치권에서도 여야대립이 증폭되는등
민심이 불안한 가운데 경제부문마저도 불협화음을 일으킨다면 지자체선거등
앞으로의 정치일정에 부담을 줄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재계 일각에서는 문민정부출범이후 김대통령이 30대그룹회장들과 차례로
회동을 하며 정부와 재계의 협력관계를 다졌던 것이 현재의 성장국면에 기
여했다고 지적,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와 재계의 화합분위기에 상당한 기
대를 걸고있다.

< 최완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