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마주치는 차창밖의 산과 들 모습이 하루같이 예사롭지 않고
새로워 보이는 것은 우주의 조화속에 살아 숨쉰다는 살아 있음의 본모습이
아닐까?

연구소가 83년 대전에 내려왔을 때는 모든게 서먹하고 겉돌던 것들이
이제는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동안 살고 있는 곳곳을
다니면서 싫은 정,고은 정이 들데로 들어서 인성 싶다.

연구소에 낚시회가 생기게 된것은 자연발생적이라 생각한다.

투어낚시 좋아하는 사람치고 금강유원지와 독락정을 밟아보지 않은 이가
전국에 없을 터이니 연구소에도 그 소문과 소문이 더해져서 금강이 물반
고기반이라는 낚시꾼 특유의 허풍이 얼마나 진동시켰었던지,새벽의 안개
덟힌 고속도로와 울퉁불퉁한 강변길을 돌고 돌아가면 더 열정적인 꾼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곤 했었다.

이러다보니 경비도 절약하고 정보도 교환하고 하면서 차도 같이 타고
매운탕과 소주잔 나누다 보니 마음도 정도 나누게 되고 낚시회가 생기게
되었다.

지금도 바쁘더라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모여서 출조를 하고 과거처럼
조황이 좋지 않더라도 마음이 푸근한 것은 나이도 먹고 인생을 보는
안목이 넓어졌다고나 할까.

예전처럼 열성적이지는 못한 것은 안사람들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처지가
된 대부분의 회원들 때문이기도 하고 발기 당시는 평직원이었으나 지금은
보직을 받은 이가 많아져서 공사간에 다망해져서 일까?

총무로서 이생각 저생각 해본다.

회원들의 면면을 보면 회장 정성종단장(위성통신기술연구단장)은
미항공우주국에서 일할때 휴스턴 근교의 습지에서 Bass 낚시도 많이
하신 분으로서 이 분야에서도 대가 이시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고 부회장을 하시다 서울사무소로 가신 임용구 서울사무소장은
지금은 참가 못하시지만 전차표를 낚았다고 놀리시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떻게 해서라도 다른 회원보다 먼저 낚겠다고 밤을 새우던 열성꾼
최각진(데이콤연구소)씨,박광호실장,김상종실장,전실원을 릴낚시꾼으로
만든 음향연구실의 정유현씨,이름마져 낚시꾼과 비슷한 강태운실장,
못낚더라도 끝까지 뚝심으로 버티는 총각 김형진씨,구수한 말솜씨의
손칠백과장과 박종득씨,마이더스의 손을 가진 강수일씨와 남극까지
가서 극지 낚시를 한 송일현씨,허풍끼가 있는 총무까지 우리 연구소
낚시회원은 모두 30여명이나 된다.

환경오염 때문에 어족자원이 줄어 저멀리 강원도에서 전라남도까지
낚시를 다니지만 그 아름답던 전국의 산과 강이 불과 몇해만에 오염에
신음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다만 몇개라도
주워오면서 미력이나마 조국강산을 그대로 보존하고자 하는 열성파
환경보호꾼이자,정말 산과 강을 자신처럼 아끼는 진짜 낚시꾼들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