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주의와 지역주의간의 조화.

21세기를 맞는 국제경제는 국가간 재화및 서비스의 자유거래를 옹호하는
세계주의와 지역 경제블록간 배타주의를 어떻게 조화해 나가느냐는 난제를
안고있다.

내년부터 국제무역기구(WTO)의 발족과 함께 각종 무역장벽을 낮추는
작업이 본격화되는 한편에는 거대한 경제블록을 형성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체제를 대신하여 내년부터 세계 무역질서를
조정하게될 WTO는 상품은 물론 서비스의 국가간 자유이동을 확대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농산물을 포함,모든 상품에 대한 국가간 수입관세를 점진적으로 인하하는
외에도 각종 정부보조금의 삭감,외국인투자규제의 철폐,덤핑등에 대한
국제적 공정기준마련및 비관세장벽을 허무는 작업이 병행 추진된다.

국가 이기주의를 바탕으로하는 양국간 교역관계를 다자간 체제로 전환,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묶는것을 목표로 삼고있다.

이를위해 국가간 통상분쟁을 효율적으로 조정할수있는 분쟁해결기구(DSB)
도 신설했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지역경제를 블록화하려는 지역 이기주의가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유럽대륙에는 12개 유럽연합(EU)회원국을 중심으로하는 17개국간
유럽경제지역(EEA)이 금년초 발족됐다.

특히 EU는 금세기말에는 단일통화를 사용하는 완전한 경제통합을 실현
하는 한편 회원국을 러시아등 동구권에까지 확대하려는 방침이다.

이계획이 예정대로 실현될 경우 명실공히 세계 최대경제권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등 북미 3개국을 묶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도
3억6천만명의 역내 소비시장을 무기로 그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에대응, 지난 8월초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우루과이등 남미
4개국정상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회동,내년초부터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 MERCOSUR )를 발족키로 했다.

메르코수르는 앞으로 칠레와 볼리비아도 회원국으로 끌어들이는등
그 몸집을 키워나갈 계획이다.

베네수엘라등 여타 중남미국가들도 새로운 자유무역지대를 설립하거나
기존 경제블록에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중에 있다.

또 우리나라 일본등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국가들도 협력강화를 통해
블록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WTO체제의 발족과 함께 각대륙이 경쟁적으로 거대한 경제블록을 형성
하는 상반된 움직임이 한층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들 지역경제블록이 안고있는 문제는 역내 국가들간에는 무역자유화를
추진하는 반면 역외국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수입규제방안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내국가의 산업보호를 위해 역외국가로부터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역내국가와는 차별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과,수입을 인위적으로 제한
하거나 반덤핑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실례로 EU위원회의 외국산제품에 대한 반덤핑조사건수는 91년 79건에서
92년에는 85건으로 늘어나는등 날이 갈수록 증가추세를 보이고있다.

또 원산지규정등을 적용,역내에서 생산활동을 하더라도 일정량의 부품을
현지에서 조달하지 않을 경우 역외생산품으로 간주하여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기도 한다.

올 4월 체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에 따라 관세인하계획을 발표
하면서도 역내산업에 민감한 품목은 개방시기를 늦추는 전략도 펴고있다.

지난달 "EU위원회가 UR협정에따라 개정중인 섬유및 의류제품 수입규제
완화안은 지나치게 역내산업을 보호하는데 주력,수입증가 효과가 0.1%로
미미할 것"이라고 런던에 본부를 두고있는 세계개발운동기구(WDM)가
비난한 것도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해 주고있다.

즉 역내산업에 민감한 면제품등의 시장개방은 뒤로 미룬채 경쟁력있는
제품의 개방을 앞세우는 보호주의적 전략을 꼬집은 것이다.

UR협정이 체결된지 5개월이 지났으나 이협정이 의회의 비준을 받은 국가는
20%를 조금 넘는 사실도 각국이 외형적으로는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도
내심 자국 산업보호에 전력하는 양면성을 드러내는 예이다.

결국 21세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세계주의와 지역주의 경제체제를
조화발전시켜 나아가야하는 과제를 안고있는 것이다.

< 브뤼셀=김영규 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