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보도 잔을 비웠다. 그리고 침통한 표정으로 질근질근 마른 안주를
씹어대며 달과 밤바다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취기어린
목소리로 불쑥 입을 열었다.

"사이고형"
사이고가 말없이 오쿠보를 바라본다.

"저. 오늘밤에 우리 둘이서 자결을 하자구. 여기서. " "뭐,자결을? "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내 손으로 자네를 체포해 간다는게 말이 되지
않는다구. 히사미쓰 대감의 진노가 워낙 격해서 어쩌면 자네를 이번에는
그냥두지 않을 것 같지 뭐야. 일이 이렇게 될줄 알았으면 차라리 그냥
섬에 그대로 있도록 내버려 둘걸. 내가 앞장서서 자네의 사면과 재등용을
진언했으니,결국 내가 자네를 망친 꼴이 됐다구" "무슨 그런 소릴,나를
위해서 한 일인데. 다 일이 꼬일라니까 이렇게 된 거지" "좌우간 나는
괴로워서 안되겠어. 만약 자네가 무슨 일을 당하면 내가 어떻게 견딜수가
있겠느냐 말이야. 차라리 나도 죽는게 낫지. 사이고형,둘이 같이 죽자구.
그게 가장 떳떳할 것 같애" "음-" "자네도 게쓰쇼 스님한테 면목이 없어서
같이 죽으려고 바다에 뛰어들었었잖아"
그러자 사이고는 잠시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한결
무게가 느껴지는 그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오쿠보,자네의 심정은 이해해. 정말 고마워. 그러나 같이
죽어버리다니,자네답지 않은 생각이라구. 자네는 그런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잖아. 자네의 냉철한 의지와 날카로운 지혜를 나는 항상
부러워했었다구. 장차 나라를 크게 이끌어갈 재목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한때의 괴로움을 못 참아서 목숨을 끊어버리다니 될 말이 아니잖아.
절대로 그래서는 안된다구. 설령 나에게 셋푸쿠(절복)의 형벌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죽는 것은 나 하나로 족해. 자네는 살아서 내 몫까지 국가와
천황폐하를 위해 일해야 된다 그거야. 알겠어?" "음-" "그렇지 않고 만약
내가 죽음을 면하게 된다면 또 시마나가시가 되든 어떻게 되든 끝내
견뎌낼테니까,우리 다시 손을 잡고 기어이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분골쇄신(분골쇄신) 하자구. 어때? 오쿠보,오늘밤 저 달아래 우리 한번
맹세를 할까? 허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