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온라인에서 불법 감청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특별수사단은 15일 보안사이버수사대가 2004년 12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법원 영장을 발급받지 않고 네티즌들의 인터넷 프로토콜(IP) 주소, 이메일 수·발신 내용 등을 감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이명박 정부 당시 경찰의 댓글 공작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온라인 불법 감청 수사 내용도 일부 공개했다. 그러나 “불법 감청은 보안수사대장의 독단적 결정이었다”며 경찰 윗선에 대한 소환 수사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종료시켰다. 이명박 정부 경찰의 댓글 공작 수사와 너무 대조적이어서 경찰이 정권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盧정부때 불법 감청" 윗선 수사도 안한 경찰
◆영장 없이 불법 감청

감청에 쓰인 프로그램은 2004년 12월께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가 납품받은 역추적시스템이었다. 법원에서 영장을 발급받아야 사용할 수 있지만 경찰은 영장 없이 이 시스템을 활용해 시민사회 단체 등을 감청했다. 조사 결과 밝혀진 감청 활동은 7건이었다. 개인 이메일 수신 및 발신 내용 불법 확인도 2건이 확인됐다. 이 프로그램은 2010년 12월31일 폐기됐다.

불법 감청 혐의와 관련해 ‘윗선’은 조금도 관계가 없다는 게 경찰 주장이다. 검찰에 송치된 인원도 민모 전 보안사이버수사대장(경정)과 프로그램 납품업체 대표·이사 등 3명뿐이다. 이들은 모두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 관계자는 “민 경정이 보안사범 검거를 자신의 숙명으로 여겨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불법 감청에 대한 지시가 있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당시 경찰청장이었던 최기문 경북 영천시장을 소환 조사하지도 않았다. 실무자와 국장급 인사를 조사한 것이 전부다. 댓글 공작 수사에서 경찰이 보여준 모습과 다르다. 이명박 정부 댓글 공작과 관련해선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소환해 적극 수사한 뒤 구속까지 했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불법 감청은 개인 일탈로 판단했다는 얘기다.

◆조사 없이 ‘윗선 몰랐다’ 주장

불법 감청을 적극 지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업무보고를 받으면 불법 감청 여부를 알 수 있지 않았겠냐는 의구심도 제기된다. 경찰은 그러나 “보고 과정에서 불법 감청 보고가 이뤄지지 않고 수사 사항만 보고하기 때문에 윗선에서는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날 경찰은 온라인 불법 감청이 아닌 이명박 정부 당시 댓글 공작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데 주력했다. 당시 댓글 작업에 동원된 경찰들이 올린 게시글 내용도 낱낱이 공개했다. 주로 천안함, 연평도 포격, 구제역, 대통령 탄핵, 김정일 사망, 유성기업 파업, KEC노조 파업, 반값등록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제주 강정마을 등과 관련해 게시글과 댓글을 올렸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보안사이버수사대가 불법 감청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댓글 공작 혐의는 당초 경찰에서 6만 건으로 추산한다고 했지만, 실제 공소장에 쓰인 범죄 사실은 1만2800여 건이었다. 경찰은 “시간이 많이 지나 게시물 등이 삭제돼 범죄 사실이 줄어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반면 이보다 더 오래전에 벌어진 불법 감청과 관련해서는 “조사 결과 드러난 혐의가 전부”라고 단언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