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必曰利(하필왈리)’

[전문가 포럼] 지금은 仁과 義보다 利가 정답이다
맹자를 스타로 만든 그 유명한 문장이다. 맹자 첫 장, 첫 구에 나온다. 양 혜왕이 맹자를 불러 부국강병책을 묻자 맹자가 이익(利)만 따지지 말고 ‘인(仁)과 의(義)’로 정치를 하라고 면박을 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나라의 생사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전국시대에 도덕정치를 주문하는 것은 그야말로 ‘공자님 말씀’이다. 그렇다고 맹자가 생존 문제를 등한시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굶어 죽을 처지면 군주가 형편없어도 벼슬을 얻어 목숨을 부지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맹자의 정신적 스승인 공자는 3000 제자를 배출했는데, 소액이라도 반드시 등록금을 받고 가르쳤다. 중국인의 실리정신(?)이 묻어난다. 2500년 전 성인(聖人)의 시대에도 이(利)가 중요했는데 오늘날에야 말할 것도 없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가 격동의 시대로 들어섰다. 사실 이제부터가 국운이 걸린 메인 게임이다. 한 수 한 수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한다. 바둑도 국수전은 대개 한두 집으로 승패가 갈린다. 특히 우리는 ‘하필 이(利)’를 잘 따져야 한다. 해방 직후에 유행했다던 자조적인 우스갯소리, “미국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일본은 일어난다, 조선사람 조심해라”가 새삼스럽다. 이미 4대 강국은 이해득실 계산이 명확하다. 미국은 북한을 영향권 안에 둘 수만 있으면 중국에 결정적 견제구를 날리는 셈이다.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절대 소외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역시 러·일전쟁과 아관파천의 당사자다. 여기에 포커페이스 시진핑 주석의 굴기(起) 중국이 무섭다. 중국은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예부터 왕서방 장삿속은 치밀했다.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빌려줄 만큼 다급하고 비장한 각오다. 요즘이 구한말의 데자뷔 같다는 말도 나온다.

노름판에서 누가 봉인지 모르면 당신이 봉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적인 협상(deal)에서 봉이 되지 않으려면 우리 민족끼리의 ‘공정하고 정직한 거래’가 최선책이다.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따져봐도 우리가 한반도 평화 정착의 최대 수혜자다. 아닌 말로 ‘초과이익환수(?)’를 해도 ‘헌법 합치’ 판단일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는 여전히 살얼음판 걷기처럼 해야 한다. 감상적인 접근은 금물이다. 특히 경제협력은 상호 간에 철저하게 돈 되는 사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협력이 되고 글로벌 자금도 끌어들일 수 있다. 다행(?)인 것은 역사적으로 북한은 중국과의 국경무역에 익숙해 장삿속이 밝았다. 조선시대 주요 상단의 본거지는 대부분 북한이었다. 또 구한말, 서양 선교사들이 의주를 통해 포교해 북한 사람들이 남한보다 훨씬 빨리 개화했다. 6·25 때 월남한 북한 동포들의 생활력이 이를 말해주고 있고, 개성공단 북한 노동자들의 우수한 생산성이 이를 증명해준다.

게다가 비록 엄청난 고초를 겪었지만 북한은 수십 년간 거의 자력으로 경제를 끌고 온 저력이 있다. 북한의 강인함과 남한 기업의 자본과 노하우를 접목하면 예상보다 놀라운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날 수 있다. 우리 기업들도 보유하고 있는 700조원의 엄청난 현금을 투자할 곳을 찾고 있다. 또 북한 경제의 ‘퀀텀점프’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최첨단산업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성공단 같은 저임금 노동집약적 산업이 소득 확산 효과는 좋지만 첨단산업이 들어가야 남북한 경제격차 해소가 빨라진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기업 간의 긴밀한 협조가 절대적이다. 어차피 정부가 남북협력기금이나 세금으로 투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대에 정부가 할 수 없는 분야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기업은 정치나 이념 밖에서 활동한다. 그래서 복잡한 방정식인 남북관계에서 비교적 매끄럽게 협력을 유지할 수 있다.

모든 것은 같이 잘살자고 하는 일이다. 경제적 번영 없이는 남북한 화해와 평화는 사상누각이다. 또 경제적 번영만이 4대 강국의 간섭을 막는 유일한 보호막이다. 그런데 경제적 번영은 기업에서 나온다. 지금은 인과 의보다 이(利)가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