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을 풀겠다는 수사가 어설프면 국민의 의심은 눈덩이가 된다. 서울지방경찰청의 전 더불어민주당 당원 김동원 씨(필명 드루킹) 댓글 조작사건 수사가 그렇다. 경찰은 지난달 21일 김씨를 구속하고도 보름간 쉬쉬했고, 연간 11억원에 달한다는 사무실 운영비 출처와 계좌추적 조사를 미적거리는 등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수사 지휘자인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는 드루킹과 연결돼 의혹을 산 김경수 민주당 의원의 해명을 재차 확인해 주는 식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드루킹에게 의례적인 답변만 했다”던 김 의원이 텔레그램으로 기사 URL(인터넷주소) 10건을 보냈고, 두 사람이 보안기능이 뛰어난 시그널이란 메신저로도 비밀대화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제야 이 청장은 김 의원 소환조사도 검토하겠단다.

이런 식이니 경찰이 사건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는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야권에서 “경찰청이 아니라 은폐청” “경찰이 수사 쇼를 한다”고 비난해도 경찰은 한마디 대꾸도 못 하는 지경이다. 오죽하면 자신도 피해자라는 김 의원이 특검 수사를 자청하고, 청와대도 국회 합의를 전제로 특검을 수용하겠다고 돌아섰을까 싶다.

드루킹 사건처럼 정치적 파장이 큰 사안은 한 줌 의혹도 남겨선 안 된다. 친여 성향의 정의당조차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라며 조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그런데도 경찰이 마지못해 수사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데 대해 야권에선 경찰 인사와 연관짓는다. 서울경찰청장이 차기 경찰청장으로 유력한 자리이고,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도 걸려 있어 청와대 의중을 살핀다는 것이다. 이유를 막론하고 수사기관이 수사를 제대로 못 하면 존재 이유가 없다.

드루킹 사건 수사는 자칫 권력기관장 인사제도에 대한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 경찰청장을 포함해 국가정보원장, 감사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등 소위 5대 권력기관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역대 정권에서 봤듯이 ‘제왕적 대통령’은 권력기관의 인사·예산권을 틀어쥐고 좌우하는 데서 비롯됐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헌 논의도 그래서 시작됐다. 경찰의 중립성 입증 책임은 경찰 자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