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더 커진 중국 리스크, 감당할 준비 돼 있나
지난 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건의한 헌법수정건의서를 통과시켰다. ‘국가주석 2연임 금지’ 조항이 삭제되면서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종신 집권하면서 중국을 빈곤과 정치 혼란으로 몰아넣었던 마오쩌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 뉴스가 전해질 무렵 미국에 유학 중인 중국 학생들은 난리가 났다. 중국이 다시 1960년대 암울했던 1인 통치시대로 회귀하느냐는 불만이 디지털 공간에 넘쳐났다. 주목할 점은 그 많은 불만과 항의가 중국이 자랑하는 위챗(WeChat)으로 소통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와츠앱(WhatsApp)으로 갈아탔다. 중국 정부 검열 아래 있는 위챗에 남겨진 디지털 지문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증거로 활용될 수 있음을 직감한 것이다.

중국의 모바일 경제를 상징하는 위챗이 동시에 사상 통제와 감시 수단인 상황, 이것이 세계 최강의 지위를 넘보는 중국의 두 얼굴이다. 비슷한 시간, 호주 국방부는 위챗 사용을 금지했다. 며칠 앞서 미국 정부는 싱가포르에 기반한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계획을 불허했다. 둘 다 국가 안보가 이유다. 브로드컴 배후에 있는 중국 정부의 그림자를 본 것이다. 중국 자신의 시장은 닫아걸고, 민간기업을 앞세운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핵심 기술과 인력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전략을 간파한 것이다.

그런데 중국을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둔 한국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중국 자본은 이미 한국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곳곳에 중국인이 사들인 땅이 넘쳐난다. 기반시설인 도로·항만·통신·전기·가스산업에까지 진출 기회를 노리고 있다. 금융·유통 부문은 이미 우리 곁에 바짝 와 있다. 중국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라면 중국 자본을 경계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중국은 통제국가의 변칙 시장경제일 뿐이다.

시장제도를 접목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중국의 성공 비결로 내세우지만, 중국의 본질은 공산당 독재의 정치가 경제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권력 장악과 사이버 감시망 강화는 그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시장 기능이 도입돼 있다지만 정부는 언제든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 시장 기능 강화, 민간 부문 확대라는 시진핑의 경제개혁 약속은 서류 속에만 남아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중국 모바일 경제, 혁신 창업에 대해 중국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중국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중국 정부가 깔아준 독점과 보호막임을 외면한다. 중국을 대표하는 통신기업인 화웨이, 텐센트는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다는 의혹 때문에 서방에서의 M&A에 잇달아 제동이 걸리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중국 자본 배후에 중국 정부가 어떻게 개입해 있는지, 한국 안보에 어떤 잠재적 현시적 위협을 줄지 한국 정부는 파악하고 있을까. 한국의 시민단체와 언론은 미국계 자본의 단기 차익을 노린 투기 가능성에는 감시의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한국의 생존과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중국 자본의 진출에는 놀랄 만큼 관대하거나 무지하다.

한국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중국 기회론과 중국 위협론의 이분법적인 구도 속에 갇혀 있다. 이념이 아니라 실체적인 중국 리스크에 대한 인식은 정보기관 보고서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 기회론에 올인하고 있다. 독립성이 보장된 규제기관, 입법·사법의 견제와 균형, 언론의 자유, 정부 견제를 자임한 시민단체 등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있지만 중국에 없는 것은 그대로 중국 리스크로 전이된다.

아무리 강력한 경쟁력을 가져도 중국 정부가 작정하고 덤비면 그 기업의 장부는 붉은색 일색이 되리란 것을 중국에 공장을 지은 LG화학, 삼성SDI의 자동차용 2차전지 사례가 보여준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중국의 사드 보복 교훈을 한국 기업과 정부는 제대로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 중국 리스크를 외면한다. 또 한국 정부는 중국 리스크를 기업들에 인지시키는 일엔 둔감하고, 막상 중국 리스크가 터진 후엔 속수무책이다. 이러니 한국은 이미 중국의 그림자 속에 들어가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더 커진 중국 리스크, 한국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