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제’ 박인비(30·KB금융그룹)가 19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해 3월 HSBC위민스챔피언스 이후 12개월여 만의 우승이다.

박인비는 19일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와일드 파이어 골프클럽(파72·6679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총상금 150만달러) 4라운드를 5언더파 67타로 마쳤다. 보기 없이 버디만 5개를 잡아낸 퍼펙트 게임이었다. 최종합계 19언더파 269타를 적어낸 박인비는 노장 로라 데이비스(영국),마리나 알렉스(미국), 에리야 쭈타누깐(태국) 동 공동 2위 그룹을 5타 차로 제치고 우승컵에 입맞춤했다. LPGA 투어 최고령 우승을 노렸던 데이비스는 이글 1개,버디 3개를 잡으며 분전했지만 첫 홀에서 내준 보기 1개와 마지막 홀 보기 1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63년 10월 5일생으로 만 54세5개월을 넘긴 데이비스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했을 경우 베스 대니얼(미국)의 46세 우승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대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전설을 쓰기에는 ‘침묵의 암살자’ 박인비의 벽이 높았다. 데이비스는 LPGA 투어 20승(메이저 4승), 유럽 여자골프 45승(통산 1위), 일본여자골프 7승 등 전 세계 프로투어에서 84승을 거둔 전설적인 골퍼다. 1996년 메이저대회 2승을 포함해 4승을 올리며 LPGA 올해의 선수에 올랐지만 2001년 웨그먼스 로체스터 인터내셔널 우승 이후 미국 대회에서는 승수룰 쌓지 못했다.

박인비는 18홀 내내 표정변화 없이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날카로운 아이언과 퍼트가 왜 ‘여제’인지를 입증했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시작한 박인비는 첫 홀에서 2m정도의 버디 퍼트를 꽂아넣으며 2타 차로 달아났다. 아이언 샷이 핀 근처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후 10개홀 연속 파행진이 이어지면서 추격그룹에 빌미를 주는 듯했다. 하지만 경쟁자들 역시 좀처럼 타수를 줄여내지 못했다.

박인비의 질주가 이때부터 불이 붙었다. 12번홀부터 15번홀까지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격차를 4타 차까지 벌렸다. 마리나 알렉스와 로라 데이비스가 이글과 버디를 기록하며 마지막 추격전을 펼쳤다.

하지만 한 번 벌어진 격차를 줄여내지는 못했다.16번홀(파4)과 17번홀(파3)에서 파를 지켜 낸 박인비는 마지막18번홀(파4)에서도 침착하게 파를 지켜내며 우승을 확정했다.

박인비는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일자 퍼터(헤드 형태가 L자형인 제품)’를 들고나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박인비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고,퍼터를 바꿔서 메이저 대회에 대비하겠다는 생각에 퍼터를 바꿔보았는데 감이 좋았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지금까지 모두 말렛형 퍼터(일명 배퍼터)를 사용해 우승컵을 수확했다.

박인비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긴 공백기를 극복하고 시즌 초반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저력을 과시했다. 첫 출전 대회에서 예열을 마친 뒤 두 번째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는 점도 흥미롭다.박인비는 지난해 8월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공동 11위를 올렸지만 경기이후 허리통증이 악화되면서 시즌을 접어야 했다. 이후 이달 초 열린 HSBC 챔피언십에 7개월여 만에 복귀해 5언더파 공동 31위로 건재함을 드러냈다.

이날만 버디 6개를 쓸어담은 전인지가 모처럼 공동 5위에 이름을 올리며 남은 대회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한국 낭자들은 박인비의 우승으로 시즌 2승째를 신고했다. 올해 LPGA 투어에 루키로 발을 디딘 고진영이 지난달 호주에서 열린 ISPS한다호주오픈을 제패하며 마수걸이 우승소식을 전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