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해여서 더 뜻깊다.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이다. 올림픽 빙상경기 개최 도시인 강릉의 경포해변에 설치된 오륜마크 앞에서 31일 시민들이 일출을 바라보며 올림픽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해여서 더 뜻깊다.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건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이다. 올림픽 빙상경기 개최 도시인 강릉의 경포해변에 설치된 오륜마크 앞에서 31일 시민들이 일출을 바라보며 올림픽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2018년, 대한민국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줄 새해가 밝았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제정하고 대한민국이 출범한 지 70주년을 맞는 2018년, 두 개의 큼직한 축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39일 뒤인 2월9일, 강원 평창에서 열리는 제23회 동계올림픽이 첫 번째 축포다. 대한민국을 하계올림픽(1988년)과 월드컵축구대회(2002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2009년)에 이어 세계 4대 스포츠 제전(祭典)으로 꼽히는 행사를 모두 연 다섯 번째 나라로 등극시키는 행사다.

또 하나의 축포는 1인당 국민소득(GNI) 3만달러 진입이다. 정부와 연구기관들은 올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2000달러 안팎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2006년 2만달러를 넘어선 이후 12년 만에 ‘선진국 진입 척도’라는 3만달러 벽을 돌파하는 것이다.

단지 본격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것만이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에 이어 세계 일곱 번째로 ‘30-50클럽(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국가)’에도 가입한다. 탄탄한 경제력과 내수시장을 갖춘 ‘경제 강국 G7’을 완성하는 일원이 되는 것이다. 한때 드넓은 해외 식민지를 경영하며 세계를 호령했던 스페인 네덜란드 포르투갈도 오르지 못한 경지다. 잠시의 슬럼프를 딛고 지난해 연간 무역 규모 1조달러를 회복하고, 세계 수출 순위를 8위에서 6위로 끌어올린 저력 덕분이다.

지난 70년 대한민국이 걸어온 도전과 성취의 과정을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하지만, 어느 한순간도 맘 편할 날 없던 간난(艱難)과 신고(辛苦)의 치열한 여정이었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를 뒤덮은 ‘촛불’과 대통령 탄핵, 갑작스러운 정권 교체와 뒤이은 과거 청산 열풍이 보여주듯 압축 성장 과정에서 누적돼 온 정치·사회적 시행착오와 갈등 비용도 적잖게 치러야 했다. 몇 년째 지속된 저성장과 그로 인한 청년취업난이 겹치면서 ‘헬조선’ ‘흙수저’ 등 자기비하적인 신조어가 범람했다. 호시탐탐 남쪽을 노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노출돼 자존감에 적잖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존재를 세계에 새롭게 각인시킬 축포와 함께 맞는 새해의 의미는 그래서 더 각별하다. 잠시 흐트러졌던 매무새를 바로잡고, 품격 있고 당당한 세계 일류 시민국가 건설을 위해 심기일전(心機一轉)할 계기가 돼 줄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라도 과거를 철저하게 따져보고 잘못된 관행(적폐)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자기 부정으로 흘러 스스로의 발목을 묶고 의욕을 꺾는 자해(自害)로 귀결돼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구성원 누구라도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마음껏 일하고,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게끔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함께 ‘꿈’을 이뤄 가는 신바람 나는 공동체로의 새로운 출발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 바로 세워야

지난 70년 대한민국의 여정을 돌아보면, 지금 환경에서는 상상조차 힘든 최악의 순간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역경과 고비를 딛고 대한민국과 구성원들을 일어서게 한 것은 “잘살아보자” “하면 된다”는 꿈과 긍정의 의지력이었다.

정부가 수립된 지 2년도 안 돼 터진 3년간의 전쟁은 당시 대한민국 인구(2016만 명)의 10%인 199만89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의 60%를 폐허로 뒤집어 놓았다. 전 국민의 12% 이상이 누울 곳조차 없는 처참한 상황에서 복구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의 부모, 조부모 세대는 그런 극한의 역경 속에서도 “후대에는 밝은 날이 오게 할 것”이라는 꿈을 잃지 않았기에 주린 배를 움켜쥐면서도 자식 교육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정부도 기대할 것은 ‘인적 자원의 힘’뿐이라며 정전 이듬해인 1954년부터 ‘의무교육 6개년 계획’에 들어갔고, 이 기간 동안 26%였던 문맹률을 4%로 떨어뜨리는 ‘세계 최대의 기적’을 일궈냈다.

어떤 상황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기에 가능한 성취였다. “요즘 젊은이들이 힘든 것은 돈이나 직장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꿈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지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를 맞아 국민들이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글로벌 무대에 도전하게끔 나라의 위상과 국격을 높이는 것도 각계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사명이다.

한국을 둘러싼 주요국들 사이에서는 국민 개개인과 기업들에 “한번 해보자”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미래지향적 비전 제시 경쟁이 치열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 아래 기업과 개인들이 마음껏 ‘끼’를 발휘할 수 있도록 규제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2기에 들어간 중국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중국몽)’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미국과 맞설 첨단 정보기술(IT) 분야 글로벌 기업들을 키워내고 있고, 아베 신조 총리의 일본도 ‘강한 일본을 되찾자’는 구호 아래 기업가 정신을 북돋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들 나라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출범한 국가 가운데 한국처럼 빠른 속도로 기적을 이룬 나라는 없다. 그 저력의 DNA가 우리들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한국을 당당한 세계 속의 선진국으로 일어서게 한 제도적 토양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주의 3박자였음을 직시해야 한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문화를 향유해온 같은 핏줄의 북한이 세계 최악의 빈곤 국가이자 골칫거리로 전락한 것이 잘못된 체제와 제도 탓이었음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나눠 갖는다”는 계획경제와 설계주의의 달콤한 구호와 제도로 나락에 떨어진 나라는 북한만도 아니다.

일부 과속(過速)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났다고 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토양을 뭉뚱그려 폄훼하고 비하하는 것은 심각한 자해이자 공멸 행위다. 지난 70년, 결핍과 모멸의 고통과 싸워가며 이뤄온 대한민국의 성취를 돌아보고, 다듬고 보완할 것은 손질하되 자존감을 놓지 말고 다 함께 도약하는 새로운 꿈을 꾸어야 한다. “혼자 꾸면 꿈이지만,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등을 두드려주면서 함께 꿈을 키워 나가는 새해가 되기를 바란다.